송지현 (b.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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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및 오디오 가이드

BIOGRAPHY

2021

MA. 영국 왕립예술대학, 도자유리

SOLO SHOW

2024

<리미널 스페이스> 예술의 시간, 서울

2023

<공허의 기억> 팩토리 2, 서울

GROUP SHOW

2024

<한국예술종합학교 결과보고전> YPC SPACE, 서울

2022

<Rising Star> New Ashgate Gallery, 판햄, 영국

2021

<Cabinet of Curiosity> Design Museum, 런던, 영국

 

ARTIST STATEMENT

송지현은 전체를 이루는 개체들의 일시적 순간성에 관심을 두고 이를 점토를 통해 표현한다. 점토 덩어리를 이루는 수많은 미네랄 입자는 채취되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두드러지는 특징에 따라 지역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찰나의 시간 동안 이들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그 시간의 점(Chronological point)에 그의 조형물은 일시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얽히거나 유리될 가능성을 열어둔다. 외부에서 관찰했을 때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듯 보이는 개체들은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가 아닌 부분적으로 바라보면 수많은 연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파편들인 것이다. 그는 안과 밖을 구분하고 있는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통해 그 안에 존재하던 내부 구조물들의 유기적인 개별성을 탐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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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어리를 이루는 점토는 일정하게 균일할 수 없는 원소들의 결합체임에도 불구하고, 땅은 영역(Territory)으로 구분되고 그 안에서 소속된 개인들은 다양한 위계를 가지며 분류되어왔다. 이에 대해 송지현은 매끄럽게 출력된 점토 구조물의 표면에 예기치 않게 찢어지고 튀어 일어난 질감을 수용하고 채취된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색을 통해 점토의 통제 불가능함과 다양성을 드러낸다. 손의 통제를 벗어나 우연한 질감들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지역에서 수집된, 소위 이국적인(exotic) 산업재(found object)와 결합함으로써 대립된 고정관념과 지위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ENG

“A boundary is not the beginning or end of a region. It is a point of connection between this side and something over there. In this sense, a boundary suggests both curiosity and uncertainty about what lies just beyond it, and implies that we cannot know or confirm what is on the other side.” _Carrie Rickey

With an interest in the temporality of individual entities that constitute the whole, I express this idea through clay. The numerous mineral particles that form a lump of clay have a diverse composition depending on the region from which they are collected and may also have district regional characteristics depending on their salient features. They may form a single mass for an instant of time due to external influences, but as time goes by, through the process of continuous disintegration and reorganisation, their form changes. My sculptures are temporarily fixed at that chronological point and they have the potential of becoming dissociated or entangled. This resembles the appearance of individuals in human society standing on the earth. Individuals seem to be identical when observed from the outside, but they are in fact organically connected while forming various relationships. Rather than being a single lump, they are fragments with numerous possibilities for connections. Through the experience of collapsing the boundary separating the inside and outside, I explore the organic individuality of the internal structures.

The project “Unsettled Earth,” which has started since 2022. In this project, I created a ceramic sculpture made in the composition of a still life, from the remains of buildings that collapsed due to external forces or the effects of time, like museum-displayed broken ceramic pieces that have different meanings beyond their functional forms. Uniformly produced industrial products reveal their formativeness when they collapse and fall away from the whole after they have exhausted their usefulness. The piles of broken, bent, and stacked objects no longer function, but are temporarily frozen at that time, to form and compose a rhythm. In the process of time, continuously collapsing, it is a momentary intersection of time. A ‘settlement’ at the intersection of countless times may actually be an impossible phenomenon. The internal structure revealed between the remains of the collapsed buildings serves as the boundary of space, dividing the self and others, and becomes a medium that retains traces of the people, long- time occupiers of the place. Earth is divided and occupied into territories, and individuals within them are temporarily sorted into hierarchies. However, as the clay that forms a lump is a combination of elements that cannot always be uniform, the individuals within it also have individuality that cannot be purely defined. The fragments that fall out of the structure also do not reveal the class in which they were located, and only traces of their lives are revealed. I make an analogy of this controlled and categorized society with a smoothly printed clay structure and show the diversity and neutrality of clay by embracing the texture of unexpected tears and fluffy textures on the surface and the colours of minerals from nature and oxides that appear slightly different depending on the collected region. I want to shed light upon conflicting stereotypes and statuses while supplementing diversity by combining accidental textures which were created without the imposition of a hand with exotic found objects collected from various regions.

 

CRITIQUE

사금파리의 두 갈래 삶
– 조숙현 (미술평론가 / 전시기획자) –

네덜란드 라익스미술관에는 과거 찬란한 실크로드의 주역이었던 네덜란드의 역사를 증빙하는 전리품이 여럿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는 깨진 중국 청자의 일부 파편도 전시되어 있는데, 난파선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청자는 깨져버린 파편 그대로 유리막 안에 모셔져 있다. ‘사금파리’는 도자기의 깨진 조각을 의미하는 우리말로, 그것의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가치는 일반적으로 낮다. 청자의 사금파리는 다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그것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히스토리, 그리고 다시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 덧씌워져 미술관의 전시품과 유물적인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버려지는 사금파리들과 그것은 또 무엇이 다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송지현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의문점으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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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술이나 예술가에 대한 정의나 규정, 혹은 인식은 ‘아름다움’과는 필수불가결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현대 예술은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부정하고, 아예 기존의 ‘관습적 아름다움’에 반기를 든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서조차 예술은 아름다움의 자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미술과 예술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가들과의 평론 인터뷰에서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예술 / 혹은 이상적인 예술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작가들이 제각기 다른 중심과 방향성을 가질지언정, 예술을 전문 직업으로 다루는 예술가에게 핵심적인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송지현 작가의 경우는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제안’ 이라는 모범에 가까운 답변을 들려주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새로움’ 이다.

송지현 작가는 도예를 전공하였다. 도예는 흙과 도자를 접하는 학문이고, 아카데미 도예에서 추구하는 ‘아름다움’ 이란 으레 관습적이고 일정한 완성 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젊은 현대작가에게 그 관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작가가 발견한 아름다움은,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1)에서 읽히는 구도와 리듬, 세라믹 질료의 미묘한 컬러와 질감의 실험하면서 경험하는 새로움, 흙의 지역적인 특성과 그 불가항력적인 힘, 그로 인해 파생되는 다양성과 그것의 수용,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에서 따라오는 ‘유기적인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이다. 작가는 네덜란드 세라믹 레지던스 스튜디오에서 연수를 하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히 ‘다양한’ 관점과 가치관에 대해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지역성과 묘한 관련성을 가진다. 이를테면, 지역에 따라 생산되는 흙의 다양한 성질, 즉 흙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미네랄 성분과 도예 과정에 따른 화학적인 과정이 모두 제각각이며, 그것은 예술가 개인이 극복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가깝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이 같은 깨달음은 꼬리를 물고 다시 ‘개인 vs 사회’라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테면, 개인이 한 사회에서 태어나서 자라나면서 받게 되는 영향력과 형성되는 가치관, 그리고 답습하게 되는 관습들은 얼마나 견고한가, 그리고 그 유연성은 어떻게 회복되는가, 사회는 얼마나 다양한 개인을 수용할 수 있는가, 개인과 사회 중에서 우선되어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물음들이 생성되고, 이런 생각이 작업에 반영되게 된다.

훗날 우리가 2000년대 이후 미술을 되돌아 볼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이슈가 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 시대이다. 예술가들의 삶과 작업에, 코로나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것은 가시적으로 그리고 무의식 속으로 스며들어 잠복하고 있다. 송지현 작가는 코로나 시기에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중단된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의 사회가, 그리고 지구가 결국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은 코로나가 우리에게 남긴 하나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 무엇으로도 방어할 수 없는, 모두에게나 공평한 바이러스의 침투는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다시 사금파리의 이야기로 돌아가, 도자기의 파편은 사실 하나의 자기를 구성하는 요체로 연결되어 있다. 비록 그 자체로는 기존의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하고 기능을 상실한 상태일지언정, 그것은 유기적인 연결성의 범위 안에 있다. 작가는 이런 유기적인 네트워크에 천착하여 건물의 내부구조물이나 파이프 같은 구성체를 세라믹으로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연장 가능선 연구>(2022)는 바로 이런 작가의 사고를 가장 잘 반영하는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크게 두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압출기로 뽑아낸 길고 자유로운 세라믹 몸통(선)과, 그 몸통들을 잇는 레디메이드 연결부속이다. 알다시피, 레디메이드는 현대미술가 뒤샹이 창제해 낸 개념으로, 기존에 존재하는 공산품을 작업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흡사 파이프처럼 생긴 세라믹 관들은 각 시리즈마다 작가가 실험하고자 하는 이슈(컬러 / 질감)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들은 다시 레디메이드(파이프 연결부속)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 얼핏 어느 공사장이나 허물어진 건물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파이프들은 의외성을 가지고 있는 질료와 연결성을 갖춘 작업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질감(texture)’이다. 예술 작품으로 가까이 들어갈수록, 의외로 벌어지는 전쟁은 바로 ‘질감 싸움’이다. 작품 내부와 외부의 전시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질감의 다양성과 의도는 예술과 작가를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다가가는 데 때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연장 가능선 연구>는 압출기로 뽑아낸 세라믹의 미묘한 질감과 색깔이 흥미로운 작업으로, 사회 속의 개인과 그 개인들의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담겨 있다.

<니힐리즘적 바니타스 구성> 이라는 작품은 작가가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발견한 일정한 리듬과 구성을 작업에 접목한 것이다. 니힐리즘(nihilism)은 단순하게는 ‘허무주의’로 번역할 수 있으나, 현대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나 도덕 윤리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과 태도로 해석된다. 이것은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현재의 이슈와도 맞물리는데,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나열된 사물들의 무심하고 느슨한 연결고리와 시각적인 연결성 또한 획득한다. 제멋대로 꼬아진 세라믹 파이프의 자유로운 선과, 그것을 지탱하는 듯 무심하게 나열된 오브제들의 설치 작업이다. ‘작가만이 포착한 새로운 아름다움 / 미학의 발견’ 이라는 신진 젊은 작가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업이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깊은 사유, 도예 전공자로서 새로운 세라믹의 질감과 컬러, 그리고 형태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이 기대 되는 젊은 작가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