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 2024 인하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석사 수료
- 2022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학사
- 2024 Inha University, School of Art, Visual Art, MFA Completed
- 2022 Inha University, School of Art, Visual Art, BFA
Exhibition
- 2023 개인 <언캐니 보이드>, 임시공간, 인천
- 2024 단체 <아트.T.인천>, 딴뚬꽌뚬, 인천
- 2024 단체 <나무들 비탈에 서다>, 트라이보울, 인천
- 2023 단체 <도깨비불>, 스페이스 빔, 인천
- 2023 단체 <물결치는대로>, 우리미술관, 인천
- 2023 Solo <Uncanny Void>, Space Imsi, Incheon
- 2024 Group <Art.T.Incheon>, Tantumquantum, Incheon
- 2024 Group <Trees stand on the slope>, Tri-bowl, Incheon
- 2023 Group <Fenfire>, Space Beam, Incheon
- 2023 Group <At the mercy of the waves>, Woori Museum of Art, Incheon
Critique
버네큘러(Vernacular),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언캐니 보이드(Uncanny Void)
1. 버네큘러(Vernacular),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
추상민 작가가 버네큘러(Vernacular Space) 시리즈를 창작하게 된 것은 팬데믹 시기 매일 마주치는 풍경들, 특히 건물을 그리게 되면서다. 이로부터 작품 소재에는 언제나 정형화된 건물이 등장하지만 그 틈 사이로 우연히 마주친 유동적인 풍경들은 유년 시절 오래된 건물을 탐험했을 때의 설렘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지역적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유년의 윗목’은 버네큘러(Vernacular) 적인 스토리를 품은 채 자생적으로 생겨난 흔적들이다. “동네의 건물들에 획일적으로 발생하는 공간과 불법 건축으로 논리적이지 않은 시설물들에 흥미를 느끼는” 작가에게 용도를 알 수 없이 존재하는 문지방 같은 요소들은 코랄 레드 색 화면으로 존재한다. 계산된 건물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산호빛 코랄 레드 색 물감은 캔버스 위에서 주술적인 효과를 발휘하여 신비로우면서도 불안과 평안의 양가적 분위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우리의 무의식이 때때로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바로 일상생활 속에서의 말실수나 농담, 그리고 꿈에서의 장면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브르통(Andre Breton)의 초현실주의 이론에서는 이러한 우연적 계기들은 우리의 삶에서 예기치 못한 뜻밖의 상황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이거나 비논리적으로 병치된 풍경에서 번뜩임을 가져다주는 ‘객관적 우연(Objective Chance)’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우연은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접해 온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Miyazaki Hayao)의 문화적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 이러한 경험적 요소들은 캔버스 위에서 우연한 계기로 만들어져 현재의 장소로부터 과거의 불안과 설렘의 주술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마치 초현실주의 이론에서 객관적 우연을 연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러한 번뜩이는 느낌은 논리적 인과 관계 없이 마주하는 뜻밖의 순간으로 오직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심리 작용인데 ‘객관적’이라는 단어와의 결합은 일면 모순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반복적 마주침은 주관적인 인간의 갈망을 객관화하는 하나의 상징적 오브제가 되어 현재의 외부 세계와 경험적 내부 세계를 이어주는 열쇠가 된다. 마치 “벼룩시장에서 슬리퍼 모양이 달린 숟가락을 우연히 발견하여 자신의 집으로 가져왔다면 <슬리퍼 숟가락(slipper-spoon)>(1934) 를 통해 우리는 무의식적 욕망의 잠재적 가능성들이 현실 속에서 실현되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의 유년시절 문화적 세계관들이 뜻밖의 마주침(encounter)을 통해 작품의 내재적 동기로 작동한 것이 버네큘러(Vernacular) 시리즈의 창작 동기인 것이다. 추상민 작가에게 뜻밖의 우연은 작가 내부의 세계와 외부의 현실 세계가 연결되는 순간이다.
2. 버네큘러(Vernacular),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작가가 마주친 인천아트플랫폼이나 임시공간이 있는 신포동 일대는 청국이 일본과의 쟁탈전에서 체결한 통상조약(仁川口華商地界章程,1884) 이후 개항지로서 부침(浮沈)을 반복하던 한국 근현대사의 현장이다. 이러한 지점을 드러내는 두 번째 버네큘러 시리즈의 사이 공간은 코랄 레드에서 버디터 블루의 단면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 공간은 옛 일본식 건물과 서양 문물이 뒤섞인 지나간 시대의 흔적을 읽어내는 반면, 지역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들의 단기 테마파크 같은 현재 분위기와 공존한다. 일제시대 때 적산 가옥으로 지어졌고 소금 창고, 이후 한증막, 서점 등을 거쳐 현재 전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곳은 모든 걸 알지만 말없이 존재한다. 이런 작품 속 공간들은 실제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의 현실화된 버전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로도 읽혀진다.
유토피아와는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인 ‘헤테로토피아’는 푸코(Paul-Michel Foucault)가 여러 저서에서 사용한 개념으로 ‘낯선, 혼종’이란 의미의 헤테로(heteros)와 ‘장소’라는 뜻의 토포스(topos)가 합쳐진 단어이다. 이러한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을 연상하게 하는 추상민 작가의 버네큘러 시리즈는 흐르는 시간 속에 작가 자신만의 질서와 논리를 가지는 ‘헤테로토피아’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급조한 듯한 판낼 지붕과 적산 가옥의 낡고 부서진 벽돌과 목조 기둥, 관심이 닿지 않아 방치된 버네큘러적인 느낌을 한 화면에 포착함이 그것이다. 이러한 지점을 표현한 자연적이면서도 오묘한 색을 발하는 버디터 블루의 단색 면은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옛날을 연상을 시키기도 하지만 블루 스카이의 유토피아를 연상하게도 한다.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령도시 같은 작품 속 버네큘러 공간은 하나 이상의 존재를 중첩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건물의 이미지는 서로 상이한 방식으로 중첩되어 “혼란 속의 질서” 라는 역설적인 논리 속으로 우리의 사유를 확장 시킨다. 현실의 규범이 예외적으로 사용되는 공간, 혹은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이러한 공간은 때때로 현실 속에서 일탈적인 활동이 허용되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 규범을 잠시 잊게 만드는 탈일상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때 작품 속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은 개항지라는 사회적 상징성을 지니는 물리적 장소에서 벗어나 감정적 충동과 함께 현실의 시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다.
3. 버네큘러(Vernacular), 익숙한 낯섦 (Uncanny Valley)
전시 공간이나 그 주변의 건물 풍경을 그린 작품을 설치하는 추상민 작가의 전시는 독특하다. 전시 공간의 내부를 그린 작업인 실제 풍경이 있는 지점에 작품을 설치해 실제 풍경과 작업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낯설게 하기 때문이다. 전시장 출구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출구 바로 옆에 설치하여 관람자가 작업을 보고 나가며 실제 풍경을 마주칠 수 있게 동선을 고려한 것이다. 동네 풍경을 익히 알고 있는 관객들과 처음 그 곳을 접한 관람객들의 다른 반응을 유도한 작가의 발상은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실험은 임시공간 개인전에서도 이어진다. 전시 공간인 1층에 쇼윈도를 포함한 건물 앞면 풍경을 그린 작업을 설치하게 되니 실제 풍경 속에 작품이 들어서게 되면서 언캐니한 분위기가 극대화되는 것이다.
어설프게 닮을수록 오히려 불쾌함이 증가한다는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 효과” 다. 미술에서 ‘언캐니(Uncanny)’는 익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추상민 작가의 이러한 실재하는 풍경 속 이질적 요소들은 해당하는 그 장소에 두었을 때 익숙하면서도 사실적이지 않은 비현실적 요소로 인해 불안감을 유발하는 ‘낯섦’을 극대화했던 것이다.
개인전에서 가장 큰 벽에 설치한 Vernacular Space 022와 Vernacular Space 023 작품 역시 실제하는 신포동과 동인천, 배다리를 잇는 굴다리 밑 통로를 그린 작업이다. 같은 공간의 마주보는 장면에 서로 다른 추상적 모티브를 병치함으로 인해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 속 공간이 되는 이 통로는 동네 주민들이 익히 아는 통로이나 실제로 많이 이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곳은 익히 알고 있느나 가까이 접해 보지 못한 장소일 터이다. 이러한 실제 공간에서 유발되는 언캐니함은 바로 이질감이 아닌 쌍둥이처럼 닮음에 기인한다. 환영을 없애기 위해 원근법을 절제하고 그려진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느낀 감각들은 낯설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추상’이라고 하는 과정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4. 버네큘러(Vernacular), 그 이후
그렇다면 추상민 작가에게 버네큘러 시리즈는 어떤 의미인 것일까?
당시 저는 인천 노동에 관하여 탐구하는 ‘도깨비불 연구회’의 일원으로서 동일 방직을 포함한 여러 공간들에 관심이 (…) 그러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공간들마저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에 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작업구상을 위해 방문한 괭이부리마을은 소설과 영화 등 여러 문화적 가치가 있으나 (…) 이러한 의미 있는 공간들이 정처 없이 방치되는 것을 만석 동에서 ‘표류하는 것들’로 보았고 그동안 해오던 Vernacular Space 시리즈에 접목시켜 작업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작가 인터뷰 중)
작가가 보기에 ‘표류하는 것들’은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지역으로 과거 노동자들의 정착지 역할을 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소설 속 괭이부리마을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되었으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의지하며 꿋꿋하게 성장해 나간다. 작가가 보기에 이러한 역사적 장소가 최근에는 빈집과 노후 건축물로 인해 붕괴 위험이 높은 주거취약지역으로 분류되었다는 점은 안착이 아닌 ‘표류하는 것들’인 것이다. 현재 새로운 도시재생의 모범사례(?)를 보이고자 선포한 이 지역에서 그동안 해오던 Vernacular Space 시리즈를 접목시킨 이유이다. 작가는 괭이부리 마을 판자촌의 지붕 판넬, 나무 조각 더미, 위험천만한 전선 등의 이미지를 단순화한 요소로 재사용하면서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 낸다.(Vernacular Space 025-026) 이러한 날것의 생경한 요소들은 작가의 추상화된 미감으로 봉인되면서 정치적 구호나 계몽이 아닌 현실화된 예술로서 기능을 한다.
이후 작가의 일관된 작업인 버네큘러 시리즈는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화면을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진행 중이다. 비슷한 형태, 획일적으로 존재하는 비슷한 공간들을 다양하게 제시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헤테로토피아적 풍경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 이미지를 선택하기 위해 산책을 하고 지나치며 마주치는 도시의 건물을 전시하는 작가의 여정은 같은 풍경을 마주치는 관람객들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분위기를 연출하고 작품 속 공간을 유동적으로 바꾸어준다. 그런 작품들에서 우리가 익숙한 공간들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 이면에는 언제나 잊고 있던 과거, 그 흔적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