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b.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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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및 오디오 가이드

 

BIOGRAPHY

2019

MF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2014

BFA.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전공

SOLO SHOW

2023

<쓰러질듯 쓰러지지 않는 균형> 동작아트갤러리, 서울

GROUP SHOW

2024

<잔잔하게 휘몰아칠 때> 갤러리호호, 서울

2019

<린킨아웃> 일민미술관, 서울

2018

<옆집에 사는 예술가> 아트스페이스휴, 파주

2016

<낯선이웃들> 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ARTIST STATEMENT

일상에서의 의외성을 가진 이미지를 수집하는 습관에서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여러 매체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편집 및 재조합하여 페인팅, 조각, 판화 등 다양한 회화적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수집된 이미지의 주체는 그 이미지에 등장하는 사물 자체라기보다 선과 면의 형태나, 색의 조화와 같은 ‘조형성’이다. 이 조형적 기준에 의해 이미지는 추상과 구상 사이 여러 갈래의 예술적 형태로 편집되어 회화로서의 구성요소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 작업의 결과물은 무의식적으로 이미지를 선택했던 이유에 대한 일종의 ‘메모장’이며 나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향유하는 ‘선택의 집합체’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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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택을 어려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럼에도 작업 중 인위적으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을 무수히 만들어 낸다. 선택을 어려워하는데도 불구하고 선택의 순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자 함은 아마 더 많은 의외적 결과를 중첩적으로 얻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예술은 둘 중 하나를 규정지어야 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갈래의 결과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작업의 결과물은 비정형의 형태들이 서로 얽혀있고 무작위적으로 놓여있는 것 같지만 그들만의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삶도 수많은 선택 사이에서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균형을 이루어낸다. 회화의 추상적 공간에서는 애초에 좋은 선택과 나쁜 선택은 없으며, 내 선택을 아끼고 인정하며 균형을 찾아내려는 ‘나’ 자신이 있을 뿐이다.

ENG

This work began with the habit of collecting unexpected images from everyday life. By collecting, editing, and reassembling images from various sources, I express them in various painterly forms such as paintings, sculptures, and prints. The subject of the collected images is ‘formativeness’ such as the shape of lines and surfaces or the harmony of colors rather than the objects themselves that appear in the images. Based on this formative criterion, the images are edited into various artistic forms between abstraction and figuration, and they are reborn as compositional elements of painting. The result of this work is a kind of ‘notepad’ for the reason for unconsciously choosing an image and expresses the ‘collection of choices’ that enjoys my own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I am one of those who struggle with making choices. Nevertheless, I intentionally create numerous moments in the process where I have to make decisions. Despite having difficulty making choices, wanting to be continuously exposed to the moment of choice may be a result of wanting to obtain more unexpected results. This is because art does not have to define one of the two, but is a window to express all the results.

The result of the work seems to be that the amorphous forms are intertwined and randomly placed, but they have their own harmony and balance. Our lives also achieve a balance that seems to teeter between countless choices without falling.In the abstract space of painting, there are no good or bad choices, and there is only ‘me’ who cherishes and acknowledges my choices and tries to find a balance.

 

CRITIQUE

무작위(無作爲)의 선택과 중(中)의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
– 김수진 (미술평론가) –

우리는 일상의 매 순간 무수한 대중매체로부터 끊임없이 마주치는 시각정보들을 받아들인다. 언어보다 이미지가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에 주체의 자발적이며 이성적인 판단과는 무관하게 매체로부터 종종 무의식적인 이미지 선택을 강요받기도 한다. 김보경 작가는 현재의 디지털 환경에서 넘쳐나는 대중매체의 시각정보에 대한 관심을 화면에 끌어들여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으로 작업을 출발한다. 예컨대 패션잡지 같은 감각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것에서 디자인적인 요소들을 선택해 재조합하여 자신의 시선이 담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뿐만 아니라 구글링, SNS, Reels 등 디지털 환경이 양산한 이미지들로부터 무작위적으로 선택한 기호들을 화면에 담아낸다. 주로 캔버스 위에 아크릴 또는 오일페인팅으로 표현되는 그의 작업은 회화 본연의 정통성을 고수하면서도 디지털 드로잉과 회화 그리고 입체로 확장성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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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관계 맺기, ‘콜라쥬 드로잉(collage drawing)’

드로잉은 김보경 작업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하다. 드로잉을 기점으로 회화, 판화 그리고 입체작품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대중매체 인쇄물에서 수집한 특정한 이미지의 패턴과 색상을 ‘콜라쥬 드로잉(collage drawing)’이라는 방법으로 화면에 풀어낸다. 패션, 인테리어, 예술 잡지처럼 세련되고 감각적인 시각적 이미지, 완벽하게 연출된 이미지의 결정체로부터 얻은 영감을 자신의 조형 언어로 탈바꿈시켜 화면에 아카이빙하듯 구축한다.

2019년 이전의 작업은 주로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무작위적으로 조합하는 방식을 취한 것인데, 이는 수집한 것들에 대해 일기를 쓰듯이 그림으로 기록하는 차원에 비중을 둔 것이다. 일명 ‘콜라주 드로잉’이라고 명명한 이 작품들은 주로 이미지의 특정한 부분을 잘라내 다른 이미지와 결합하는 과정속에서 원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지점에 주목한 것이다. 작가는 완벽하게 연출된 기존 매체의 이미지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강조하기 위해 색채의 미묘한 변화와 조형을 구성하는 각 요소 그 자체의 미감을 부각시킨다. 예컨대 2017년 전후에 발표한 ‘Layered color’ 시리즈에서 볼 수 있는 기하학적 조형들의 역동적인 구성과 색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은 성실한 시각정보 수집 과정뿐 아니라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의 세련된 시선을 응축해 보여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한편 꼴라주 드로잉은 수집한 잡지를 찢어 조합해 만든 것인데, 이 드로잉을 기점으로 디지털 이미지로 옮긴 뒤 다시 캔버스 위에 회화로 그려냄으로써 하나의 이미지 또는 한 작품이 다른 형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Convert A to B”라고 부르는 이 일련의 시리즈는 디지털 드로잉에서 회화로, 다시 입체에서 다양한 드로잉 시리즈로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회화에서 또 다른 매체로 옮겨갈 때마다 원본 이미지가 다른 차원으로 새롭게 생성되거나 소멸, 변환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이 과정을 작품에 녹여낸다.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다양한 형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작업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면면에는 이미지의 조형, 색상, 패턴 같은 기초적인 요소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 발생한 무수한 선택과 배제, 대립과 긴장 그리고 화합을 거쳐 탄생한 콜라주 드로잉은 회화, 판화 그리고 입체의 경계를 폭넓게 아우르게 된다.

무의식적인 직관과 감각이 작동하는 순간

최근에 발표한 작품들은 이전처럼 이미지 정보를 수집하고 기록한다는 차원보다는 이미지를 조합할 당시 순간과 상황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이미지를 선택할 때 무의식적으로 발동하는 작가의 감각이나 혹은 특정한 상황과 사소한 사건에 반응한 감정이 만들어 낸 자신의 기억과 서사를 화면에 투영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기하학적이고 평면적인 화면에 새로운 회화적인 요소가 등장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무중력 속 확장>(2022), <감각의 속도>(2022), <천사의 야생화>(2023)는 이 같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즉 그림의 기하학적인 요소들 외에도 그림자와 볼륨감을 더했고, 수평과 수직 구도 중심에서 나아가 반추상 이미지를 삽입해 드로잉을 중첩해 얹음으로써 의도적으로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균형을 바라보는 정원의 새벽>(2023)에서 작가는 일상 가운데 마주친 사소한 사건을 포착해 심리적인 면과 섬세한 감수성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새벽 시간 깨어있을 때 느낀 언표 불가능한 고요한 무게감이 주는 아우라와 동트기 전 발산되는 은미한 빛의 변화와 색감을 ‘균형을 바라보는 정원’이라는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고 있다. 이 작품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을 위해 작가는 평소에 작품 제목을 만들기 위한 폴더를 별도로 마련해두고 단어를 지속적으로 수집한다고 밝혔다. 이 폴더에서 적합한 단어들을 감각적으로 골라내어 이들을 조합해가면서 상황성에 부합하는 제목을 붙인다고 한다. 이미지를 재조합하는 것처럼 단어의 무작위적인 조합에서 예상치 못한 우연성이 발현되면서 자유로운 상상을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작인 <원-테이블 아일랜드>(2023)와 <여기에 핀 달의 꽃>(2024)의 경우는 일종의 정물화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초기작들과 유사한 작업의 프로세스를 보여주지만 기존의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형태 대신에 구체적인 이미지가 등장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전 작품들이 시각성을 기반으로 이미지 정보들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재조합하는 연속적인 과정에 집중된 것이었다면, 최근에 작가는 자신의 루틴화 된 일상 가운데 관찰되는 내적인 요인과 심리적인 변화로 시선을 옮긴 것으로 생각된다. 즉 작가 스스로 미묘한 심리적 변화를 감지하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어떤 갈등의 지점들을 마치 작품 안에서 해체하고 깨뜨려 해소하고자 하는 심리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로 이 같은 순간이야말로 작가에게 무의식적인 직관이 극대화되어 작동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작가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심상(心相)을 일련의 구체성을 띤 이미지로 상징화하고 화면에 거침없이 그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작 가운데 <우연적 질서-BLANK>(2024) 시리즈는 드물게 무채색으로 그린 작품들이다. 초기작부터 줄곧 조형 요소로서 색상의 조합과 경계를 강조하며 색에 대한 감수성과 민감도에 대해 언급한 작가에게 무채색의 화면이 다소 낯설게 보이기도 하다. 작가에 따르면, <우연적 질서-BLANK>에서 색을 배제함으로써 조형성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동안 화면에서 시도했던 조형에 대한 실험들을 점검하고 재확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이 무채색 소품 시리즈는 마치 영화 원작의 감독판(Director’s Cut)이나 번외편과 다름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원작에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정제된 언어를 드러내거나, 이미지에 대한 작가의 세련된 관점을 응축해 표현함으로써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해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목 <우연적 질서>에서 ‘우(偶)’자가 지닌 상징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연(偶然)이란 본래 ‘아무런 인과 관계없이 뜻밖에 저절로 된 일’이라는 뜻으로 우연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은 무계획적이거나 즉흥적으로 표현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것은 작가의 방법론인 ‘무의식적 선택’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에서 창작의 우연성은 이성의 지배를 거부한 비합리적이고 추상적인 것, 그리고 미적 · 도덕적으로 선입관이 없는 사유나 행위를 표현하는 전위적인 예술 경향으로 대표되었다. 반면에 동양의 사유체계에서 ‘우연성’이란 기교의 익숙함을 위한 필수적인 수련 과정이 있고 난 이후에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보경 작가의 경우 후자로서, 이미 회화의 조형과 이미지를 다루는 기법과 전개에 있어서 자신의 관점을 개성적으로 성실하게 관철해왔다. 그런 만큼 지난한 숙련과정이 선행된 이후에 화면에 구현된 무작위(無作爲)의 흔적들 그리고 “우연적 질서”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경험이 미적인 것으로 작용할 때

살펴보았듯이, 김보경의 작업은 어떤 미적인 지식이나 담론보다는 일종의 무(無)목적적인 일상을 관찰하는 습관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소한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 다양한 관점을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전환시킨다. 무의식적인 혹은 직관적 감각에 따른 선택을 표방하는 작가이지만 작업을 위해 쉼 없이 행해지는 선택의 순간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선택의 상황성이 발생하는 흐름에 온전히 자신을 맡겨두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감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자신의 욕망 그 자체도 예술을 위한 표현의 창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속도감 있게 전환되는 무수한 대중매체 이미지를 선택하는 순간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무의식적인 감각과 직관력이 작동한다. 여기에 ‘우연적인 질서’가 관여하면서 균형을 이루며 화면의 질서를 찾아 나아간다.

인간의 모든 경험에는 일종의 리듬이 존재한다. 나를 둘러싼 주변환경과 상호관계 안에서 일종의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 디지털 환경으로부터의 상황성에서 일종의 리듬을 바라보고 감각적으로 사유하며 그들만의 질서를 찾고자 한다. 아울러 일종의 ‘선택의 집합체’들이 자신이 펼친 화면에서 충돌, 변환되면서 자아내는 균형에 주목한다. 비정형의 형태에 기댄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재구성되면서 고유성을 창출하고, 무작위의 감각적 선택의 결과는 치우침 없는 중용(中庸)이라는 상반된 질서와 공존하면서 점차 미적인 지점으로 향하게 된다.

한 개인의 사소한 경험과 미적인 지각을 결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은 혼자만의 감정이나 감각 안에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이의 공감을 얻고 세계와 교류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일상의 사물 그리고 사건들의 세계와 자아의 완전한 “상호 침투(interpenetration)”를 강조한 바 있다. 일상의 사건이나 현상과 자신이 관계 맺기 위한 적극적인 행위, 다시 말해 이미지에 대한 시선과 파편화된 경험을 결합하는 일은 김보경 작업의 원천적인 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비록 이미지를 취하는 방식이 무작위성을 기반으로 할지라도 자신의 산만하고 파편적인 경험을 응축시키고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 집중할 것이다. 이 과정은 이미지와 관계 맺고 밀접하게 침투하기 위한 작가만의 긍정적인 시선으로 작용하고, 이것이 작품에 영감으로 작용한다면 그 안에 내재된 리듬을 타고 미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 주체의 모든 경험은 하나의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록 그 선택이 무의식적인 감각과 우연에서 비롯된다 하더라도 미적인 것으로 작용한다면 작품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들 것이다. 이에 작가는 이미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단지 선과 형태, 색상 같은 외재적 특징에만 주목하지는 않는다. 선과 선, 면과 면이 맞닿은 경계, 또 색과 패턴의 조합에 잠재된 드러나지 않은 질서를 꿰뚫어 보고 찾아내기 위한 치열한 순간을 화면에 투영한다. 일상 가운데 작가 자신의 균형[中]을 찾고자 애쓰는 것처럼 말이다. 현상적으로 드러난 이미지는 창작 주체의 의도를 다 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예술가들은 먼저 자신이 선택한 이미지를 인정하고 ‘이미지화 된 상’을 통해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관을 피력해야만 하는 상황성을 만든다. 김보경 작가는 구체성을 지양하는 대신에 잠재적인 상징성을 함축한 상(象)을 화면에 실어 자신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자신의 미적인 경험을 담아 궁극적인 지향을 향해갈 수 있도록 이미지와 관계 맺는 수고로운 순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