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b.1985)

WEBSITE

대표 작품 및 오디오 가이드

* 오디오 가이드는 널위한문화예술 & 사적인컬렉션과 함께합니다.

 

BIOGRAPHY

2015

MFA. 미국 칼아츠, 실험애니메이션과, 통합매체

2011

BFA. 국립공주대학교, 카툰코믹스

SOLO SHOW

2022

<Into Drawing: 할머니는 아빠의 엄마> 소마미술관, 서울

GROUP SHOW

2021

<제 1회 소주 공예비엔날레> 만산투어리스트 센터, 소주시, 중국

2019

<LA ART SHOW: DIVERSartLA> 엘에이 컨벤션 센터, 로스엔젤레스, 미국

2018

<한국을 만나다> 서던 유타 미술관, 시더 시티, 미국

2016

<RADICAL ATOMS>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Deep space 8K, 린츠, 오스트리아

 

ARTIST STATEMENT

2016년 추운 겨울, 처음 와 본 타지에서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생각했다. ‘꽤 오래간 만들어온 내 작업이 지금 내리는 눈 같네’라며 읊조렸는데, 그간 제작해 온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업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던 눈송이처럼 아름다웠음에도 뜻하지 않게 녹아 없어진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덤덤히 받아들이려한 파일 손실이나 기기고장같은 문제가 그날 따라 유난히 말썽을 부렸고, 적절한 재생 매체가 사라지자 구겨진 종이에 연필과 먹으로 그린 몇점의 드로잉만이 나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해명을 필사적으로 늘어놓는 자신을 보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울 움켜쥐려는 것 같아 이내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몇 시간 동안 거리를 배회하며 나는 되도록 만질 수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지만 민감한 성격 때문인지 박력이 필요한 재료를 떠올릴 수는 없었다.

READ MORE

나의 첫 개인전에 낯선 외국인이 내 앞을 스쳐지나 한 여성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티끌만큼의 서운함 없이 당시의 일이 나는 무척 자랑스러웠는데, 당연히 여성작가의 것이라 생각한 설치물과 드로잉이 꺼벙한 머리에 남루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제작했다고 믿기 어렵게 우아하다 (elegant) 느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 내가 외면해 온 재료를 돌아보고 시시콜콜한 개인사를 드러내며 작업을 넓혀가던 시기가 생각났다. 당시 재료를 고르고 모양을 구성할 때 그 동기가 되어준 푸른 산세와 내가 살던 동네, 그리고 주변에 머물러 준 사람들의 변하는 모습을 나의 주관으로 뿌예진 창 너머로 바라보며 가능한 만큼 성실히 묘사해 나갔다. 풍경의 거리차와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당시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하던 영상편집의 화면전환 기법을 이용하여) 천천히 그리고 추상적으로 묘사하던 동영상 작업으로부터 손바닥 정도의 작은 종이에 클래식 펜으로 가는 선을 촘촘히 쌓아가던 일, 불규칙하게 하늘거리는 실을 공중에 매달아 기하학적으로 정제된 입체를 만들던 과정이 가슴 한편을 스쳤다.

거미가 집을 짓듯이 얇은 선을 그어서 부피를 이루어간다. 집에 돌아오면 손에 밥그릇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만큼 실을 꼬고 묶으면서 나이테가 자라듯 안쪽에서 바깥으로 층위를 이룬 3차원의 입체 드로잉을 만든다. 앙증맞은 인물과 주변 식생을 선으로 그리고 그에 색을 얹은 영상작업까지 평면, 입체 등, 내가 제작한 대부분의 것에 드로잉스런 성격이 스며있다. 한때 ‘미술작가’하면 자연스레 낡은 붓에 두텁게 물감을 묻혀 본인 키만 한 캔버스에 색을 바르는 화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보일 듯 말듯한 선을 칼처럼 날카로운 펜촉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떠나간다. 그리고 도저히 고개를 숙일 수 없을 만큼 목과 어깨가 결려올 때 머쓱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투명한 나일론 줄에 색을 입히고 실을 이어나간다.

ENG

In the freezing winter of 2016, I thought about something while it was heavily snowing on an unfamiliar street I had never visited before. I muttered, “My work, to which I dedicated years, looks like snow falling right now.” Even though it was as beautiful as the snowflakes that decorated the black night sky, the treasured digital animations were unexpectedly melting away. Issues such as file loss and device malfunctions, which I tried to deal with, caused irksome trouble that day, and without appropriate playback displayers, the only work I could use to introduce myself was a few drawings made with pencil and ink on crumpled paper. As I desperately tried to demonstrate, “I am really more than this,” I felt as if I was trying to grab water that was slipping through my fingers, so I ended up leaving the pitching room. After that, I wandered the streets for a while, I realized that I wanted to touch tangible materials, but perhaps because of my sensitive nature, it was natural to avoid things that force me to saw, or weld surrounded by noise and sparks.

At my first solo exhibition, an American gentleman passed by me and referred in his greeting to a woman’s show. Instead of being disappointed, I was very pleased to hear this, because it seemed that the installations and drawings naturally let visitors imagine that they were created by a female artist. Appreciating the elegance of the works, it was hard for them to believe a man with unkempt hair and shabby clothes was the one who really created them. Then I came up with the days I was reunited with forgotten tools and began to reveal personal anecdotes with words from my experiences. Images and memories of rugged mountains, the neighborhood I lived in, and people around me were illustrated to show how they changed over time, and I loved the way they got blurred by the frosted window of my subjectivity. The gallery was filled with memories that I depicted, shifting abstract landscapes by varying distance, seasons, and time (using video transitioning techniques I was trained on for a living). I was stacking up almost invisible lines from a classic pen on a palm-sized piece of paper and forming geometrically refined three-dimensional structure by hanging and tying fluttering threads in the air.

Like a spider constructing her web, I draw fine lines to make a volume of layers. Floating three-dimensional structures are drawn from inside to outside as a tree trunk grows. I weave and tie knots over and over, then later I nearly drop my dinner plate at home since my finger grips went loose with fatigue. Almost all of my works—works on paper, sculptural installations, and even videos with sketched lines and dilated colors on them—reflect characteristics of drawings. My vision of an artist was once a stereotype of a man holding a brush dampened with thick oil paint and struggling in front of a large canvas as tall as himself. In contrast, I put my forehead on the desk and carefully draw semi-transparent details using a sharp pen tip that is just like a blade. And as soon as my neck and shoulders become so sore that I can no longer lean close to the paper, I stand up like a zombie, color the transparent nylon string that comes down from the ceiling and connect threads.

 

CRITIQUE

작가만의 삶과 일상의 흔적들이 공존하는 사유(思惟) 공간
– 이태호 (미술평론가, 김해문화재단 문화예술본부장) –

어렸을 때부터 만화가의 꿈을 꾸었던 작가 이성재의 작품은 색다르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애니메이션 드로잉부터 디지털 페인팅, 영상 및 설치작품에 이르기까지 여러 매체를 넘나들면서 한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변화를 주고 있다. ‘유치해도 피부에 와 닿는 작가 자신만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작가 이성재는 일상생활 속 일부분을 조명해낸 듯한, 자신만의 일상(日常)과 삶의 단면들을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언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왜냐하면 이성재의 작품들은 자신이 경험했던 삶의 이야기를 단순히 순차적으로 나열하고 전개하는 ‘스토리(story)’ 방식이 아닌, 그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고 조합하는 ‘플롯(plot)’ 방식뿐만이 아니라 ‘서사(敍事)’라고 불리는 일종의 암시적인 내러티브(Narrative) 방식 역시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 이성재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작품의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제작 방식은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상징성과 은유성, 암시성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READ MORE

작가 이성재는 대학시절, 유학을 가기 전까지 한국에서도 몇몇 전시에 참여했었는데, 그 당시의 작업은 마을이나 풍경 속에 사람들이 등장하거나 동물들이 뛰어놀며 날씨나 일상이 바뀌는 형식의 애니메이션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유학시절, 작가는 미국에서 거주하며 다른 문화권에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심리와 불안감, 문화적인 차이와 소외감 등을 표현하면서도 일상생활 속 삶의 흔적들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드로잉이라는 평면 작업 방식뿐만이 아니라 영상 및 미디어, 설치작품 등 입체적인 작업 방식 역시 구사하고 있다. 유학을 가기 전,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향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자유’라는 이념과 ‘인권’에 대한 깊은 기치(旗幟)는 역설적으로 물질적이고 금전(金錢)적인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작가는 미국에 살면서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주로 나일론 실과 봉돌, 아크릴 물감, 매니큐어, 비즈와 18k 금박 등을 매개체(媒介體)로 하여 표현되고 있는 이성재의 오브제 재료들은 작가가 미국 유학시절 느꼈었던 낯선 문화와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경험과 경제적으로 불안정했던 생활, 불안했던 기억들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의 체험과 기억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되고 있다. 작가로서의 인생에 대한 확신도 어렵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했을 그 시절의 작가의 모습과 마음상태를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이성재의 작품들은 사용된 재료와 매체의 일상적인 의미에 비해 다분히 은유적이고 암시적이다. 작가 이성재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여성적인 오브제와 재료적 특성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해볼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미적관점과 의미부여를 통해 그것들을 새롭게 재해석해냄으로써 특별한 의미체계와 가치체계로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예술작품이 작가만의 고유한 정서가 내포된 심연(深淵)의 온도를 드러내듯이, 이성재에게 있어 작품에 표현된 다양한 형상들과 오브제, 그리고 독특한 재료들은 작가만의 내면과 심상(心象)을 가장 자유롭게 극대화시켜 표현할 수 있는 주요 수단이자 매체가 되고 있다. 특히 이성재의 설치작품들에서 주요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는 천장에 매달려 내려오는 나일론 실은 암시적인 수많은 ‘수직선’을 통해 작가만의 새로운 공간과 다양한 형상들을 창조해내고 있고 나일론 실이라는 독특한 매체와 함께 그의 작품에 사용되고 있는 여성적인 레이스와 란제리, 매니큐어, 비즈와 18k 금박 등의 재료적 특성들은 우리가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8년도부터 제작하기 시작했던 <그녀의 진짜 비밀> 시리즈에서, 작가 이성재는 미국의 초대형 쇼핑몰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값비싼 여성 브랜드의 레이스와 란제리 디자인 등을 특유의 나일론 실과 함께 작품에 차용(appropriation)함으로써 ‘지퍼 zips’라고 불리는 수직선의 단색 캔버스 회화를 통해 ‘숭고미(崇高美,Sublime beauty)’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미국 색면추상 회화의 대가였던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시그니쳐 컴포지션(Signature composition)을 패러디하고 있다. 수직선으로 설치된 나일론 실을 통해 공간을 분할하기도 하고 이어주기도 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사색의 공간으로 이끌고 있는 <그녀의 진짜 비밀>은 역설적으로 좁고 어두웠던 작가의 1층 아파트와는 다르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직(垂直)으로 오르며 눈이 부셔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로 화려하면서도 신세계와도 같았던 대형 쇼핑몰에서의 강렬했던 작가의 경험을 암시적으로 패러디한 것이었다. 이처럼 이성재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친숙함을 전제로 하고 있는 이런 재료적·매체적 특성들은 천정에 매달려 내려오는 나일론 실이라는 수직선인 특성과 함께 이를 통해 형성된 전체적인 형상과 전시공간을 외부공간과 분리시키기도 하고 동시에 연결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일론 실이라는 매체를 통해 창조된 ‘작가만의 새로운 공간’은 관객들로 하여금 신비로움과 경이로움, 초월성, 숭고함과 경외감 등을 제시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깨진물(Broken Water)>. 이번 화랑미술제에서 선보이는 작가 이성재의 작품 제목이다. 미국 유학시절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관객들이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한 작업과 ‘자신만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였던 작가는 2017년 그 첫 번째 작품이었던 <공중 드로잉 : 구형의 구(球)>를 시작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제작되었던 <그녀의 진짜 비밀>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타국에서의 낯선 문화와 낯선 공간에서 느꼈던 이방인의 모습을 바탕으로 ‘생명의 탄생’이나 이를 통한 ‘여성과 어머니로서 삶의 전환’ 등을 작가만의 독특한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성재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을 때,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여성적’이라는 느낌은 아마도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실과 레이스, 매니큐어, 비즈 등 재료적 특성 때문일 것이다. 남성 작가임에도 오히려 ‘여성적인 감수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 이성재의 작품들은 아마도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뿐만이 아니라 타국에서 도움을 주었던 여성들과 막내이모 등 주로 여성들과 가족에 대한 사랑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성성’과 ‘모성애’, ‘가족애’,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생명의 의미’와도 같은 주제를 다양한 방식의 매체(media)로 풀어내면서 그 이야기와 주제에 걸맞은 여성적인 오브제와 재료들을 선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작품제작과 전시 등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작가들 역시 작품성과 예술성뿐만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다양한 매체방식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매체(Media)의 어원적 의미는 ‘중간’을 지칭한다. 그리고 이 ‘중간’이라는 개념은 서로 떨어져 있는 양쪽 항의 거리를 전제하면서도 그 양쪽 항이 거리를 좁히며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 다시 말해 ‘소통(Communication)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거리가 먼 것을, 다시 말해 어떤 것과의 거리감을 파괴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서로 친밀해지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이성재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여성적인 감수성의 재료적 특성들은 자신만의 이야기와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면서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메신저(messenger)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성재 작품의 특징이자 상징(signature)처럼 되어버린 그의 이런 재료적 특성들은 매체적 특성으로서 일정부분 ‘여성성’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1970~80년대 초기 페미니즘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사회비판적인 의식이나 여성의 사회적인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런 재료적 특성을 통하여 드러난, 작업하는 행위자체를 통한 ‘물성(物性)’의 발현이자 동시에 자의식과 자아 발현의 공간, 작가만의 삶과 인생의 흔적, 일상의 흔적들이 공존하는 사유(思惟)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작가 이성재의 작품들은 소재와 재료 및 매체가 가진 새로운 의미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물성(物性)’에 대한 연구로부터 출발한 것으로서,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영감이 창작(創作)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번 전시 작품 <깨진물(Broken Water)>을 좀 더 살펴보자. 2022년 작품인 <깨진물>은 2019년 미국에서 작가의 아내가 임신하고 출산했을 때 느끼고 경험했던 기대감과 두려움, 당황했던 경험들, 더불어 작가가 어린아이의 엄마이자 여자로서의 대체자(代替者) 역할을 수행해야만 했던 과정 속에서 느꼈던 생명의 신비감과 경외감 등 다양한 경험들이 내포되어 있다. 이번 작품 <깨진물>에서도 작가는 나일론 실과 비즈, 레이스, 매니큐어 등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는 일상적인 재료들을 작업의 소재로 활용하여 작가만의 경험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설치작품을 제시하고 있는데, 작품 <깨진물(Broken Water)>에는 출산의 경험을 통한 어머니로서의 여성의 삶의 전환과 생명의 탄생 등이 은유적, 암시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작품이 설치된 공간의 전반을 점령하고 있는 붉은색 선혈(鮮血) 역시 강렬한 생명력뿐만이 아니라, 출산과정에서 동반되는 여성의 희생과 헌신 등의 의미와 상징성과 암시성 등을 다양하게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재료와 오브제의 특성으로 인하여 부드럽고 따스한 감성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 이성재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가의 아내가 소개해준 재료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같이 다가가기 쉽고 포용성이 있는 것 같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필자는 이번 <깨진물>의 전시공간이 마치 요람(搖籃)처럼 그 안에 생명을 품고 있다가 온전한 생명체로 세상에 발현시킨다는 의미에서 어머니(母)의 자궁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생명체의 모체(母體)를 통해 세상과 조우(遭遇)하게 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있어 모체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는 바로 ‘여성’이고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을 부여받은 고귀한 존재가 된다. 따라서 이성재의 작품의 주제가 되고 있는 ‘가족애’와 ‘생명의 탄생’, ‘생명에너지(생명력)’의 근간은 바로 ‘여성성과 모성(母性)’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우리는 이번 작품 <깨진물>을 통해 출산과정에서 작가가 느꼈을 불안함과 두려움, 기대감과 경외감, 신비로움 등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다.

2019년, 아내는 아이를 임신했고 혈혈단신 우리 둘뿐이었던 곳에서 저는 아내의 밥을 챙기고, 영양 주스를 갈아주면서 엄마가 될 여자의 엄마노릇을 간접 경험했습니다.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당황스러웠던 일이 많았습니다. 미국 병원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아내는 하혈이 심했고 출산 후 간호사와 같이 화장실을 갔다가 일어나며 저혈압으로 기절을 했습니다. 저는 고사리 같이 작은 아이를 팔에 안은 채 물을 발로 차며 도와달라고 소리쳤지요. 다행히 아내는 금방 의식을 회복했지만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알려준 대로 아이를 모유 수유했습니다. 퇴원이후 저는 정말 사막 한가운데 혼자 있는 것 같았고 경험이 없던 여러 일을 겪으며 너무 무서웠습니다.
– 작가노트 중 –

이처럼 작가 이성재의 작품은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소통방식을 통해 전시공간을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로 탈바꿈시키면서도 작가만의 이야기 공간이 아닌, 관객들의 사유(思惟)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유학시절 낯선 문화와 낯선 공간에서 느꼈었던 이방인의 시각 혹은 타자로서의 시각에서 관객들에게 보다 친절하고 친숙하게 다가서려는 작가의 노력과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전체 전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강렬한 색채의 빨간색과 바닥에 수없이 흩뿌려져 있는 매니큐어 물방울(양수), 반짝이고 있는 비즈는 작품 <깨진물(Broken Water)>에 내포되어 있는 ‘여성성과 모성애’, ‘여성의 삶의 전환’과 ‘생명의 탄생’, ‘여성의 희생과 헌신’ 등 다중적인 함의성을 내포하면서 호기심과 상상력의 세계, 사유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