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 2019 슬레이드 미술학교, 회화, 석사
- 2017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 석사
- 2019 Slade School of Fine Art, Painting, MFA
- 2017 Ewha Woman’s University Painting, MA
Exhibition
- 2021 개인 <거리 (모아두기) 두기>, Keep in touch Seoul, 서울
- 2025 단체 <Paper Biennial>, The Royal west of England Academy, 브리스톨, 영국
- 2024 단체 <Drawing Biennial24>, Drawing Room, 런던, 영국
- 2024 단체 <아시아 현대미술 청년작가 공모전>, 세종문화회관2관, 서울
- 2024 단체 <Cass Art Prize exhibition>, Copeland gallery, 런던, 영국
- 2021 Solo <Distancing and Collecting>, Keep in touch Seoul, Seoul
- 2025 Group <Paper Biennial>, The Royal west of England Academy, Bristol, UK
- 2024 Group <Drawing Biennial24>, Drawing Room, London, UK
- 2024 Group <Asia Contemporary Emerging Artist Competition>, Sejong Art Center gallery2, Seoul
- 2024 Group <Cass Art Prize exhibition>, Copeland gallery, London, UK
Critique
미술관에서의 체험: 최지원의 시간과 감정
손지민 예술철학
이번 2025 년 화랑미술제에 출품된 재영 작가 최지원의 작품들은 ‘미술관에서의 체험’이라는 테마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출품작들은 모두 2023 년에서 2024 년에 제작된 것들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해독되어야 할 주조물, 개념이나 다수의 판단을 끌어들이려는 메시지 또는 의도를 제안한다기보다, 작가 본인의 체험을 우선적으로 성찰, 탐구한 과정이자 그 과정의 산물이다. 본 비평 프로그램의 목표는 그러한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관객 경험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작가 자신은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기억’을 통해 수행한다 천명하고 있다. 작가의 기억은 작가 스스로의 체험이 갖는 여러 층위들과 에피소드들 속에서 구성되었을 것이다. 체험 내의 기억들은 가장 단순한 것들부터 가장 중요한 것들까지 모두 체화된 이미지들의 뒤섞임일 터이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의식 흐름 속에 있으며 그 흐름 속의 부분들은 머릿속에서 어떤 일의적 정의를 품고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체험을 구성하는 심신의 복잡하면서도 일시적으로 발현되는 감성적 원리들 – 우연, 감정, 생각, 관성, 스트레스 등 – 에 붙이는 이름들과 그에 필히 따르는 개념들은 실제 현실에서는 각 개인의 체험 내에서 전혀 “다른 문제들을 낳게 하고 존속시킨다1”. 그렇기에, 신진작가의 작업 세계, 특히 본인의 체험에 대한 성찰에 우선적으로 입각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알리고 그에 대한 비평을 제안하는 이번 기회를 맞아, 필자는 작가의 작업을 재빨리 담론 체계에 유입시키기 전에, 우선 작업에 연관되는 공동의 경험을 중심 기점으로 삼는 비평을 수행하여 향후 최지원 작가의 비평에도 기여하고자 한다. 예술 비평을 수행하기 위한 수사학적 방법론은 작가, 비평가, 관객 모두가 경험한 사실들의 기술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필자는 이러한 기술로부터 향후 작가 비평들이 서로 더 원활히 소통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체험과 경험
그림에 대한 공동의, 공공의 경험을 기술하는 일은 우선적으로 관찰자가 파악한 사실관계를 도출함으로써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관계는 작가가 자신의 체험된 삶 속에서 작업 역시 체험했다는 사실, 그리고 작가가 이 작업의 소재, 기폭제이자 매개를 기억으로 설정한다는 사실 간의 관계이다. 여기서 기억은 우리가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뇌신경계의 기능과 그 기능으로 말미암은 의식상태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기억은 그러한 기능이나 의식상태보다 더 넓은 범위, 즉 공동 경험의 장에서 존재한다. 또한, 만약 시간이 어떤 형태로건 물질세계에 형적을 남긴다면 그러한 형적은 대상들에 남겨지는 것처럼 의식상태에도 남겨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억은 – 그것이 나의 내면에 있는 대상이건, 인지된 대상이건 – 시간을 살며 대상들과의 접촉을 자신의 존재에 포함하고 있다. 공동 경험의 장에서 세계와의 접촉은 대상에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은 공동 경험과 개인의 기억을 잇는 중요한 통로이다. 한마디로 기억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 예술작품을 포함하는 주위 세계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이번 <2025 화랑미술제 신진작가 특별전>에 출품된 최지원의 작업은 미술제나 박물관, 갤러리, 아트페어와 같은 공동 경험의 장에서 항상 발생하는 접촉 사례들의 흔적이며, 작가 자신의 제스처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흔적이라 할 수 있다.정작 구분되어야 할 것은 인간의 기억과 세계의 기억이 아니라 개인의 체험과 공유된 경험이다. 이번 특별전 출품작들에 대한 작가노트에서 최지원은 이러한 구분을 암시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어떤 작품에 나의 인지활동과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그 동기가 무엇이건 간에), 나 자신의 감각과 생각에 집중한다는 것, 즉 나 스스로의 느낌과 이념에 집중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관객들은 스스로가 관찰되고 있는 것을 모르기에, 그로 인해 새어나오는 가장 은밀하고 진실된 감성적 반응을 […] 관찰”한다. 작가는 이러한 스스로에 대한 관찰, 조망, 느낌을 소재로 “작업 속에 담아낼 수 있”다2. 이렇듯 체험과 경험은 실제로는 이어져 있다 할지라도 개념적으로는 서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 미술관에서 그림 한 폭을 보며 한 사람이 하고 있는 특정한 체험은 오직 그 한 사람의 체험이며, 그 사람은 그러한 체험의 순간에 자기 자신의 기억, 감정, 표상, 언어적 표현 등에 집중하고 있을 터이다. 동시에, 제삼자(예를 들어 관찰하고 있는 작가)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그러한 체험에 접근할 수밖에 없다. 체험은 기억을 소환하고 재구성하며 활용까지 할 수 있는 내 심신의 실황, 내가 구성하고 있는 ‘지금 여기’인 반면, 경험은 기억으로 얻어진 지식, 믿음, 태도와 같은 공유되는 결과들이다. 체험은 모든 감성적 내용들을 동반하는 시간 구성에 대한 것이지만, 경험은 그러한 시간 구성의 흔적들을 정리한 실타래 묶음과도 같은 판단과 지식에 대한 것이다.
이 둘을 개념상 구분하는 이유는 작품의 기연이 된 작가의 체험이 공동 경험의 장, 여러 시선들이 교차하는 장, 예를 들어 미술관과 같은 공동 경험의 장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우리에게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3 그리고 만약 작가가 자신의 말대로 미술관에서의 체험을 기억하여 그 기억이 주는 반향들과 그에 대한 생각을 붓의 움직임으로써 표현한다면, 이는 더더욱 고려되어야 할 사안이다. 개인의 체험은, 특히 그것이 주의력을 요구하고 기억할 만한 각종 기연들이라면, 경험의 짜임새를 구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체험이 나의 일상 경험 구조에 변화를 가할 만큼 비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분명 그러한 체험은 그렇지 않은 체험과는 달리 이전 경험들에 대한 나의 감성적 해석을 기억을 통해 소환하고 재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들이 작가의 감성적 삶 속에서 특정한 순간에 비범한 지위를 차지했으며 나아가 작품의 주제가 되었다는 가정은 합리적 가정일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그림과 말을 따라 그 작업세계에 실증적으로 접속하기 위해서는 우선 작가가 그림의 어떤 부분에서 그러한 비범함을 강조하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의미는 작가의 일련의 선택들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그러한 이해는 우리의 기억을 여러 곳, 여러 경험에서 찾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으며, 이는 주의력의 분산과 집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는 최지원의 그림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작가가 표현하는 대기화, 유출, 확산, 범람은 그러한 분산과 집중을 수행하며, 수행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가가 미술관에서 무얼 보았고 무얼 느꼈는가를 묻기보다, 작가의 선택의 흔적을 작가가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그림의 특징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딘가로 연결되는 머리들
출품작들에서 확실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림 속 조형적인 것들과 뒤섞이는 등장인물들의 신체이다. 특히 <The Visit>(2022), <Galaxy in Your Mind>(2024), <소용돌이 치는 마음>(2023) 등의 작품에서 최지원의 머리들은 모두 어딘가로 연결되고 있다. 실제 체험 속에서 이 연결은 개인마다 여러 가지 대응점을 갖겠지만, 무엇보다도 공통적인 연결은 우리의 주의력일 것이다. 즉, 심신의 안과 밖을 조망할 때 감각과 생각을 그러한 조망의 특정 부분에 집중시키는 능력이다. 주의력은 나 자신이 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이 주어졌가를 스스로 감각 조망할 때 발휘된다. 이러한 선택은 대부분 경험을 통해 그 경향이 나타나고, 선택의 결과물, 특히 예술 활동 내의 선택의 결과물, 즉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기억의 흔적은 그러한 선택의 이유로의 중요한 통로이다. 그림 속 대상을 동일화를 통한 구분이 아닌 시간의 흐름으로 인지하게 하는 여러 제스처들이 곧 그러한 작가의 선택이며, 이는 곳곳에서 관객 경험의 기연으로서 자리하고 있다. 블랙홀과도 같이 떠 있는 듯한 원형 응집과 수축, 갖가지 방향으로 변모해 나가는 신체로부터의 유출이나 그림으로부터의 범람, 배경의 대기와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머리로부터의 증발 또는 기화 등이 그러한 기연이다. 관객 경험의 입장에서 이 기연을 체험하면 두 가지 식별 패러다임이 서로 뒤섞이게 된다. 하나는 대기의 패러다임, 다른 하나는 신체의 패러다임이다. 작가의 제스처는 이 두 패러다임을 우리의 인지-심리적 활동 안에서 엉키게 한다. 대기화, 유출, 확산, 범람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첩된 물감층들에 그 제스처의 기억이 있으며,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우리는 (작가가 본 것, 느낀 것이 아닌) 작가의 시간에 대해 물어야 할 것이다. 작가는 분명하게 자신의 체험과 그로부터의 기억을 통해 작업을 한다고 말하고 있고, 그러한 체험은 작가의 시간을 구성한 비범한 체험이었으며, 그러한 시간에 접속하는 것은 나와 물질세계 모두의 기억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므로, 작가의 그림은 우리가 해독해야 할 것이라기보다 따라가야 할 제스처들의 흐름, 곧 체험된 시간이다.
시간은 체험자를 전제한다. 체험자의 입장에서 시간은 체험으로 구성되는 삶이고, 이 구성의 양태에 따라 상대적이 되며, 체험자들 중 인간은 이 삶을 선택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은 곧 에너지의 흐름이다. 모든 개인은 이 에너지의 흐름을 나름의 시간으로서 살고 있으므로 그러한 삶 속에서 구성되는 시간(존재의 전개)은 상대적이지만, 그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작가의 선택들은 표현적이다. 그러므로 관객으로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이 표현이 있게 된 계기, 작가의 선택들로 말미암은 작업의 시간(체험)과 그렇지 않은 시간(경험) 간의 연결고리일 것이다.
감정의 도화선으로서의 기억
최지원에 따르면 이렇게 이전의 기억과 지금의 체험을 결부시키 도화선은 감정(또는 기분, 심리적 현상)이다. 「기억: 에너지의 흐름」이라는 작가노트에서 작가는 기억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과도 같다”고 말하며 자신이 여러 과거 체험들, 즉 응축된 시간들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이 구성되는 과정을 되짚는다. 이러한 과정은 특히 이번 출품작에는 포함되지 않은 <Scattered Memory>(2019), <Headache> 연작(2023)이나 <15-Hour Flight>(2024), <Miss You, Always>(2024)에서 잘 나타난다. 작가는 모든 출품작들에서 등장인물들의 눈과 얼굴 표정을 거의 그리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소환하는 기억의 감정적 근원에 주의력을 기울이게 하려는 듯하다. 그림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즉각적으로 소환되는 표상들은 곧 그림을 보는 이의 감정이 활성화시키는 표상 소환의 과정과 그에 동반되는 심신 반응들의 총체일 것이다. 이러한 기억의 소환 행위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미 사전에 구성되었던 표상의 패턴들에 의해 먼저 구조화될 것이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보는 이는 그러한 스스로의 구조화(안)와 지각 대상(밖)에 주의를 동시에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주의력과 감정이 서로 내통하는 체험 내에서 지각은 대상에 집중되지만, 주의력은 인지된 대상과 내면의 현상들로 분산된다. 이렇게 체험자의 시간이 주의적 인지활동으로 구성된다면, 그것이 하나의 통일된 체험이 되는 것은 특정한 기억이 결부되는 순간일 것이다.
작품에서 중첩되는 시간들, 즉 기억된 과거의 작가의 의식 상태, 지금의 의식 상태, 나의 감정의 대상이 된 심신 안팎의 감각들, 타인의 시선 등은 바니쉬와 오일과 섞인 흑연, 그리고 여러 가지 색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검정색 안료의 ‘번짐’으로 표현되었다. 이 번짐은 최지원이 상기된 유출, 대기화, 범람 등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식인데, 체험과 경험의 중간지대에 서있는 체험자인 작가에게 있어 이 번짐은 메타포 이상의 지위를 갖지만, 관객의 경험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거기서 작가는 자신의 체험 내 표상들의 그림자를 제시하고, 그것은 우리의 경험의 일부가 되며, 거기에서 감정을 통해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그러나 체험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 모두에서 감정은 체험과 경험의 연결고리이며, 기억이라는 통로로 우리의 주의력을 인도한다. 나아가, 모든 의식은 어떤 기분, 감정, 심리적 상태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다르게 구성하므로, 작가가 기억하는 과거의 체험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시간들이다. 감정은 체험의 최초 체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하는 요소이며, 기억은 우선 감정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심신 내 이끌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표상들을 구성한다. 기억을 감정의 개입 역사에 따라 소환하는 능력은 실효적 자극들, 예를 들어 예술작품이 주는 자극에서와 동일한 감정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가 영화 속 장면과 유사한 실제 장면을 보고 영화 속 그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최지원의 작업은 특정한 기분, 감정, 심리적 현상을 체험할 때 점차 비결정적으로 변하는 우리 스스로의 감각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해준다.
2025. 04.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