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정
JUNG Mijung

b.1983

보이는 것  | 2025 | 캔버스에 유채 | 116.7×80.3cm

그곳 | 2022 | 캔버스에 유채 | 91×116.8cm

보이는 것  | 2025 | 캔버스에 유채 | 53×72.7cm

Biography

  • 2014 첼시 예술대학교 회화과 석사 (런던, 영국)
  • 2008 세종대학교 회화과 학사
  • 2014 Chelsea College of Arts, Fine Art, MFA (London, UK)
  • 2008 Sejong University, Painting, BFA

Exhibition

  • 2026 개인 <시간의 흔적>, 갤러리 이주, 서울
  • 2025 개인 <palimpsest:팔림프세스트>, 공간 썬더, 서울
  • 2024 개인 <연결: Connection>, 갤러리 실, 플레이스낙양, 낙양모사, 서울
  • 2023-2024 개인 <시간, 공간 그리고 기억- 시간과 공간을 기억으로 저장한다>, 이랜드 갤러리-아트로/ 이랜드문화재단, 서울
  • 2022 개인 <그 사이의 시간: The time in between>, 서울신문 서울갤러리, 한국프레스센터, 서울
  • 2026 Solo <Time’s Trace>, Gallery IJooo, Seoul
  • 2025 Solo <palimpsest>, Space Thunder, Seoul
  • 2024 Solo <Connection. Solo Exhibition>, Gallery Sil, Place Nakyang, Seoul
  • 2023-2024 Solo <Time, Space and and Memory — Storing Time and Space as Memory>, E. Land. Gallery-Atro, Seoul
  • 2022 Solo <The time in between>, Korea press center Seoul gallery, Korea press center ,Seoul

Critique

겹쳐진 지각이 만든 기억의 풍경

이선영 (미술평론가)

 

정미정이 유화로 그린 도시풍경은 간판이나 인파 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조용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풍경의 실제 모델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도시이며, 그곳에서 머물거나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1983년생의 정미정은 여행을 좋아하던 외할아버지가 찍은 흑백 사진들을 간직해왔다. 20세기 중반경에 찍혔을 빛바랜 오랜 흑백 사진들은 시간의 힘과 매력을 알게 해 준다. 작가 또한 십수 년 전 유학 시절의 풍경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는다. 지금까지는 한국 풍경은 없는데, 이러한 선택은 그의 작품에 내재한 몽환성과 이국적 분위기를 말해준다. 예술사에서 사진의 출발이 그랬듯이, 그에게도 사진은 기록과 수집의 역할을 했다. 그가 포착한 풍경은 회화를 통해 구도와 색감이 재조합된다. 한 장소를 여러 번 이동하면서 찍은 미세한 궤적이 올해 개인전 ‘시간의 흔적’(갤러리 이주)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전시에서 기억의 과정를 다룬다.

정미정은 기억을 ‘끊임없이 흐르고,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유화의 층위는 과거의 잔상을 덧칠하며, 붓의 움직임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기억의 진실이 아니라 기억의 변형이다. 그 흔적들은 완결되지 않은 형태로, 여전히 흐르고 변화하는 시간의 일부로 남는다’ 작가는 작품집 ‘팔림프세스트-사라지며 남는 것들’(공간 썬더, 2025년) 서문에서 그 안에 수록된 작품들이 ‘시간성을 기반으로 실재(reality)와 회상적 풍경을 동반한 이미지’라고 요약한다. ‘팔림프세스트’라는 비유는 한 공간에 중첩된 여러 시간의 층을 강조한다. 거듭되어 쓰여 이전의 흔적이 남는 양피지 위의 쓰기 같은 방식은 또한 거듭된 해석을 요구한다. 하나의 중심을 따르는 상징이 아니라 시간적 추이를 따르는 알레고리 방식이다. 그의 작품은 겹친 지각이 만든 기억을 그린다. 사진이라는 매개를 거치지만 강하게 남는 잔상이 선택된다.

잔상은 여러 겹으로 표현되며 평균 3겹 정도의 층이 깔려 있다. 명확한 건축 구조는 잔상으로 교란되지만, 기억과 작품의 뼈대를 이룬다. 한가하게 스케치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보통 쌩쌩 돌아가는 도시풍경을 일차적으로 기록하는데 사진은 드로잉(drawing)이 했던 역할을 수행한다. 최종 작품이 회화가 아닌 사진이라면, 실제 장소에서의 세팅 등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하다. 본격적인 작업은 빛의 속도로 포획한 시각적 사냥감들을 풀어놓고 회상하고 조율하면서 이루어진다. ‘빛으로 그리는’ 사진은 그 시점과 지점의 지각을 기억하는 수단이다. 수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인 피사체는 작가의 회상으로 재탄생한다. 흔들림은 그가 풍경 앞에서 원근법적인 지점이 아닌 이동의 시점을 반영한다. 같은 장소라도 시간이나 날씨에 따른 변화 또한 포함된다. 한 곳을 다른 각도 다른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시리즈 작업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같은 곳도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될 수 있다.

특히 도시의 익명성은 의식과 질서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와 무의식과 무질서가 스멀스멀 드러나는 밤의 세계로 나뉘곤 한다. 정미정의 작품은 대개 멀리서 포착되어 이동하는 자의 거리감과 미적 거리가 함께 작동한다. 풍경을 보는 누군가에게 트라우마나 스트레스를 줄 자극적 요소가 별로 없다. 인상 깊었던 건물 주변을 거닐면서 여러 각도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그려졌을 때 궤적을 남겨둔다. 만약 그곳이 지나가던 장소가 아니고 한동안 머문 장소였다면 일상의 궤적 같은 것이 반영됐을 것이다. 고정되어 단조롭기도 하지만 깨져서도 안 되는 삶의 기저 말이다. 그것은 이국성이 누군가에게는 일상성인 경우도 포함한다. 일상의 자리바꿈이 바로 여행 아닌가. 특히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어디를 가도 대단한 새로움이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여행지가 아닌 여행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현실적 요소가 감축되지만, 기록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변형을 위해서는 원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환상은 사실의 이면이고 그 역도 참이다. 시간이 지난 사진이 그렇듯이 그 시간과 공간만의 공기가 담겨있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 복제 시대가 개막되면서 고유한 아우라가 사라졌다고 했지만, 가속화된 현대의 시간은 얼마 전 과거를 담은 사진이나 영상에도 아우라가 고여있다. 작가는 그러한 분위기(아우라)를 기억과 감성과 기법으로 살려낸다. 스카이라인 위를 차지하는 하늘은 풍경의 배경이며 그 푸른 색감을 지상까지 뻗쳐 다채로운 도시의 색감을 몇 가지로 물들인다. 미동을 기록하는 그의 도시풍경은 적막하다. 분명히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그의 회화에서는 많이 생략되어 있다. 예외적인 작품 [그곳 there](2022)에서 도시는 두 사람의 만남을 극적으로 주목받게 하는 무대화된 풍경을 이룬다. 그것은 원근법이 원래 무대장치의 고안과 관련되어 탄생한 것임을 알려준다. 흔들리는 실루엣 속의 그들은 살아 움직인다. 그가 그린 건축물도 마찬가지다.

작품 [The visible](2025)에서 전경의 행인 또한 건물처럼 선으로만 그려져 있고 앞의 계단이 행인의 다리와 중첩된다. 건물의 빛 또한 흔들려 더 밝아 보인다. 주마등이나 판타스마고리아의 풍경이다. 축제나 전쟁 등 일상이 단절되는 상태가 아닌 평소의 도시는 고요한 시선의 장소이며, 타인은 서로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가 작동되는 곳이다. 사람들 또한 건물처럼 시선의 대상이 될 뿐이다. 정미정의 작품에서 인파는 여러 겹의 층위가 조합되면서 삭감된다. 어떤 작품들에서 그들은 실체가 아닌 실루엣으로 남는다. 작가는 움직이는 인파가 아닌 건축으로 대변되는 단단한 구조에 더 집중한다. 건물은 그 자체로 많은 인파의 들고 남을 전제하는 도시의 구조에 속한다. 구조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다시 인간에게 강하게 작용한다. 작품 [The time in between](2020)에서 수직 수평의 구조물이 교차하는 풍경은 도시에서 보이는/보이지 않는 좌표계를 부각한다.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좌표들은 사람들의 머무름과 이동을 규정한다. 도시는 추상적 공간이다. 객관적이면서도 냉혹하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이는 그곳을 인간적 온기가 담긴 구체적인 자리(Place)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종교학자 조너선 스미스가 말하듯이 자리(place)는 공간(space)과 다르다. 정미정은 ‘Place’에 대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스며든 기억의 집합이다. 지나간 순간들은 그 안에 겹쳐 남고, 각기 다른 감정과 함께 다시 떠오른다. 나는 그 흐릿하고 중첩된 기억의 장면들을 하나의 화면으로 옮긴다’라고 말한다. 모노톤으로 조율된 풍경은 화면 아래 다양한 조명들을 돋보이게 한다. 구조와 흐름의 조화에 한 도시의 성공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The time in between] 시리즈에 대해 ‘짧은 시간의 회상-시간과 시간 사이에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 사이의 시간 시리즈는 line(구성적 요소)과 light(비 구성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작품 [The time in between](2018)에서 복잡한 구조에 흔들리는 층까지 가세한 풍경은 다른 작품에 비해 도시의 활기가 두드러진다. 정미정의 작품 속 도시는 현대도시 풍경의 일단이 그렇듯이 부정적이지는 않다. 가령 그곳은 소외나 위험이 있거나, 삭막하지 않다. 음악으로 치면 뉴에이지처럼 잔잔하고 편안한 기조가 흐른다. 하지만 관객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수도 있다. 가령 푸른 색감에 푹 담가 있는 듯한 풍경에서 멜랑콜리를 느낄 수 있다. 서로에게 타자라는 현실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 도시는 혼자라는 감상을 자아낸다.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그리움의 파랑은 음악에서 블루스를 만든다. 미국의 흑인들이 시작한 블루스의 기원은 블루이다.’라고 지적한다. ‘영어권에서 파랑은 슬픈, 멜랑콜리한 이라는 뜻’(에바 헬러)을 갖는다. 도시는 처음에 계획된 것처럼 유토피아는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나 헤테로토피아로 변모한다.

대체로 여행지가 될 정도로 연혁이 있는 도시는 오래된 정다운 것이 계속 있거나 최신의 흐름을 반영한 것들이 같이 엮여 편안함과 기분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인구 구조와 소비문화 트렌드의 빠른 변화를 감당하지 못해 유령화되거나 오래된 것이 머물러 있는 그저 방치되어 황량함을 보이는 곳 말이다. 작품 [The visible](2025)에 나타나듯, 그의 작품의 구도는 대체로 안정적이다. 그것은 실제 세워져 있는 건물 구조에 충실한 것과 같은 맥락에 있다. 안정감으로부터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차이는 동일성과 연동된다. 특히 풍경이 하늘의 색을 배경으로 한 모노톤의 건물일 때 안정감은 통일감도 확보한다. 겹쳐진 건축물의 각도가 큰 경우에 화면은 포커스가 맞지 않은 반투명 평면들로 가득하다. 한 장소의 두 장면이 과감하게 한 화면에 맞닿은 작품 [The time in between](2018)에서 전조등을 밝히는 차량의 흐름은 현대의 도시가 방해됨 없이 통과하는 장소임을 말한다.

작품마다 제각각인 원근감은 시간이라는 키워드가 있는 그의 작품에 속도감을 보여준다. 작품 [그곳 There](2022)은 고정된 원근법은 아니지만, 하늘 끝과 길의 끝이 만나는 어떤 지점을 생각하게 하는 급격한 원근법이 적용된 도시풍경으로, 고요 속에서도 속도감이 있다. 도시에서는 뭐든 빨리 다가오고 빨리 멀어진다. 또는 그래야 한다. 도시에서 느림은 좋은 생존전략이 아니다. 도시는 소비를 위해 머무는 경우가 아니면 흐름을 유도하며, 강요하기까지 한다. 도시는 겉보기의 자유로움과 달리, 빈틈없는 법적 경계들로 빼곡하다. 견고한 질서는 조금씩 변화하며, 작가가 건축적 풍경에 도입하는 미동은 그러한 변화의 과정을 반영한다. 작품 [그곳 There](2022)에서 길 양옆의 건물은 마치 기차처럼 관객을 향해 달려오는 듯하다. 아치형 구조물 사이로 연결된 통로가 있는 작품에서 보행자의 시선처럼 건축적 광경이 시시각각으로 펼쳐진다.

[그곳 There] 시리즈에는 한적한 교외로 연결될 듯한 통로에서 중첩된 선들은 이동의 시점이 강조된다. ‘그곳’은 관객을 향해 걸어오는 듯한 보행자가 보았을 법한 밀집된 도시에서의 시각적 흐름이 내재한다. 이방인에게도 막힘없는 이동은 도시의 개방성과 자유를 보장할 것이다. 하늘은 도시적 특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설적 요소다. 작품 [그곳 there](2022)은 잿빛 하늘에 더 많이 할애한다. 귀퉁이만 등장하지만 도시 자체가 가지는 밀집도는 허공과의 대비를 통해 더 강조된다. 이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서 저 멀리 지평선 위에 스펙터클하게 펼쳐진 도시풍경은 화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하늘은 블루 톤으로 통일감을 준다. 하늘을 삼면으로 싸안고 있는 건축물을 그린 [The visible](2025)은 문명이 자연의 몫을 침식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도시인의 삶은 하늘 한번 편안하게 보지 못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에 지배되기도 한다.

하늘은 결코 한 가지 색으로 환원되지 않은 다양한 빛과 색의 살아있는 캔버스로, 그 분위기를 지상까지 연장한다. 작품 [The visible](2025)에서 하늘과 길, 건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오토바이 같은 탈 것까지 모두 단색조다. 아쿠아 톤 색감은 작가가 포착한 세계를 하나의 분위기에 담근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짝패로 가진다. 작가는 ‘보이는 것 The visible’에 대해 ‘능동적이며 자발적으로 자기동일성을 유지한다. 그래서 기억의 이미지는 자신이 보는 대로 보았던 것을 스스로 편집하여 기억해 낸다’라고 말한다. 반면 ‘보이지 않는 것 The invisible’은 ‘시각적으로 의존한 과거보다는 오감(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부터 불러온 감각의 기억이 감정과 생각이 섞여 재형성한다. 그것으로 본인만의 기억의 층을 만들어낸다’라고 말한다. 작품 [The visible](2025)에서 조명이 가득 켜졌을 길가 부분만 엘로우 톤으로 화면 전체는 푸른 물에 잠긴 듯 차분하다.

건물이 원근법적 구도를 유지한다면 도시 속 자연은 근접의 시점을 거의 평면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풍경에서의 잠재적 움직임은 도시나 자연이나 연속적이다. 기억에서 중요한 시간의 차원은 과거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현재에 의해 재배치되는 유동적인 것이며, 미지의 것이 된다. 그가 ‘이곳’처럼 잘 아는 곳보다는 ‘그곳’ 같이 여행지의 시점을 선호하는 것은 미지의 몫을 강조하는 것이다. 장소와 사람의 단절을 강화하는 현대에서 사실 ‘이곳’도 우리가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곳은 어디에나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다. 사진이 시간을 시공간적 단면으로 고정한다면 회화는 지속이다. 정미정의 작품에 재현적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변형을 위한 실마리일 뿐이다. 시공간적 간격에서 새로운 이미지와 서사가 생성된다. [The visible](2025)에서 도시에서 더 잘 정비된 자연은 곡선적 흐름으로 도시의 선들을 보완한다. 도시 속 자연이 주는 완충작용이다.

[The invisible](2025) 시리즈에서 도시의 공원이나 녹지에 깔린 잔디는 여러 겹의 작업 끝에 움직임을 내재한 마술적 표면으로 변모한다. 조금씩의 움직임이 쌓여 거대한 변화를 이루는 것은 식물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세필로 계속 층을 쌓아 잔디를 그려 흐르는 듯한 효과를 낸다. 유화로 얇고 묽게 쌓아 올리면서 화면은 은은하게 색이 배어 나오는 효과가 있다. 수많은 선으로 빼곡한 문명에 맞춰진 자연인 잔디는 조형 언어를 이루는 무수한 선적 흐름과 중첩된다. 정미정의 주요 소재인 도시 건축은 선 그 자체로 구축된다. 그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건물은 구조를 이루는 선들에 대한 작가의 매료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건축가라면 도면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며, 건물 청사진처럼 블루 톤이다. 최근 작품 [Place장소](2026)에서 화면을 꽉 채운 자유롭게 쓱쓱 그은 듯한 선들은 건물 자체에 내재한 수많은 선을 공유한다. 작가는 피사체와 작품의 구조를 중첩하며 그곳에서처럼 빠르게 시간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