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KIM Sooyoun

b.1979

달력 2014 – 진도 | 2021 | 종이에 수채물감과 연필 | 40x100x0,2cm

신성한 정칠각형과 함께 흐르는 시간_ Reflection _260723 | 2023 | 캔버스에 아크릴 및 혼합 콜라주 | 50x50x4cm

신성한 정칠각형과 함께 흐르는 시간_ 250124 | 2024 | 캔버스에 아크릴 및
혼합 콜라주 | 50x50x4cm

Biography

  • 2017 독일 할레 예술대학 회화·섬유예술 마이스터슐러 수료
  • 2015 독일 할레 예술대학 회화·섬유예술 석사
  • 2000 계원예술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 전문학사
  • 2017 Burg Giebichenstein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alle, Painting·Textile Arts, Meisterschüler Program
  • 2015 Burg Giebichenstein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alle, Painting·Textile Arts, MFA
  • 2000 Kaywon University of Art & Design, Department of Interior Architecture & Design, AA

Exhibition

  • 2023 개인 <TimeSound>, 베를린 공과대학교 수학 도서관, 베를린, 독일
  • 2021-2022 개인 <TimeSound>, 갤러리 힘멜라이히, 막데부르크, 독일
  • 2021 단체 <제13회 피렌체 비엔날레>, 포르테차 다 바소, 피렌체, 이탈리아
  • 2020 단체 <underneath>, 갤러리 노르트, 베를린, 독일
  • 2019 단체 <TEILCHENBESCHLEUNIGER>, 슈피너라이, 라이프치히, 독일
  • 2023 Solo <ZEITKLANG>, TU Berlin Mathematics Library, Berlin, Germany
  • 2021-2022 Solo <ZEITKLANG>, 21.12.07 – 22.01.05, Gallery Himmelreich, Magdeburg, Germany
  • 2021 Group <XIII Florence Biennale>, Fortezza da Basso, Florence, Italy
  • 2020 Group <underneath>, Galerie Nord, Berlin, Germany
  • 2019 Group <TEILCHENBESCHLEUNIGER>, Spinnerei, Leipzig, Germany

Critique

김수연: 예술가의 직관으로 해석하는 우주의 질서

고동연 (미술사가)

 

“현재 저는 ‘천지창조(Creation of Heaven and Earth)’라는 큰 주제 아래에서 수년 동안 기하학적 언어를 활용하여 시간의 개념을 시각화하고 감각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김수연, 인터뷰, 2025)1)

 

숨겨진 우주의 체계를 향해

김수연은 회화의 오랜 주제를 건드린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모든 과학이 그렇듯이 예술가도 세상의 근원에 관심을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예술가는 현상적인 단계 너머에서 자연의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시각적인 기재로 환원하고자 해왔다. 예컨대 1920년대 바우하우스의 기초 수업을 담당했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차 세계대전 직전에 발간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Concerning the Spiritual in Art)』(1911)에서 진정한 예술 작품은 외부 세계의 모방이나 장식적 목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요구와 감정적 충동에서 비롯되는데 이러한 내면적 요구를 “내적 필연성”이라고 불렀다.2) 그리고 이 내적 필연성은 임의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는 원칙이 실은 우주의 질서나 체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수연은 세상을 관찰과 기록이 가능한 일종의 체계로 인식해왔다. 동시에 작품의 결과물을 제시할 때는 개인적이고 임의적이며 심지어 변칙적인 방식도 도입한다. 관객의 개별적이고 감각적인, 따라서 여건과 개인의 시점에 따라 가변적인 경험이 가능하다. 여기서 두 가지 얼핏 보기에는 연결되지만 다른 세계관이 등장한다. 부연하자면, 작가는 ‘천지창조’에 나타난 세계의 이치가 어떻게 매일의 일상에서 관찰되는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한다. 달과 해가 정해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괘도를 도표 방식으로 과학자와 같이 기록한다. 하지만 기록에 해당하는 소묘로부터 파생된 일련의 평면, 그리고 설치 방식은 변조에 가깝다. 게다가 작가가 홀로그램, 색지, 색지 안에 색상을 넣게 되면 설치 작업이 주위 환경이나 관객과의 소통을 통해서 더욱 많은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의 결과가 생성된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자신 구성의 출발점으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지속해서 흩뜨리는가? 김수연이 구현하고자 하는 종교화, 혹은 풍경을 통한 종교화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은 이미 세계 1차 세계대전 다양한 세계관들이 충돌할 때 추상화가들이 던진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술가는 사회적 혼돈이나 전환기에 절대적인 우주관, 세계관을 다시 재정리하고자 한다. 하지만 새로운 우주관에는 작가만의 주관적이고 직관적인 해석이 수반된다. 그렇다면 이들 간의 괴리는 왜 생겨나는가? 독일에서 독립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수연에게 자연과 우주의 창조를 대하는 태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아가서 이때 예술가의 직관과 차별화된 위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세상은 7일 동안 창조되었다.

<The Depth of Time and the Holy Heptagon> 시리즈에서는 빛과 기하학을 통해 시간의 층위를 탐구한다. 이 작업에서 등장하는 정 칠각형 구조는 성서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창조의 7일을 은유하는 형태이면서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일주일의 7일 구조와도 연결되는 시간의 질서를 상징한다. (김수연, 이메일 서신, 2026)3)

김수연에게 7은 중요한 숫자이다. 그녀는 창세기에 나오는 7일 동안 창조의 시간, 그리고 7개의 음표 등이 신학에 기초를 둔 서양의 문명이 고수해온 상징적인 수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창조의 7일이라는 시간 구조와 서양 음악의 음계(do, re, mi, fa, sol, la, ti, do) 기원 사이의 연관성을 상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간과 소리를 연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5도권(Circle of Fifths)>의 음악적 구조 또한 7개의 음계를 바탕으로 생성되어 있다. 부연하자면, 자연을 관통하는 일종의 리듬이나 반복적인 주기가 예술의 기본 체계를 결정짓는다는 작가의 신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찬가지로 김수연은 〈Moon Calendar〉 시리즈를 통해 1년 전체의 일출·일몰 및 월출·월 몰 시간 데이터를 수집한다. 보름달은 월출과 월몰 시간을 기준으로 중앙의 수직축에 위치하며, 양쪽으로 갈수록 초승달의 단계로 변화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태양과 달의 이동 궤적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1년의 날수를 상징하는 365개의 원 내부에는 하루 동안 태양과 달의 흐름을 대비시킨 어두운 면(밤)과 밝은 면(낮)이 공존한다. 천문학자와 같이 그녀는 달이 지는 시간, 해가 뜨는 시간, 해가 지는 시간을 세밀하게 수집하고 기록한다.

이처럼 세밀하게 자연 현상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수동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 작가는 최대한 자연과 우주의 섭리, 혹은 그녀가 주장하는 천지창조의 원리가 어떻게 지구, 달, 우주의 자전과 공전을 통해서 나타나는지를 가감 없이,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한다. 반면에 〈Moon Calendar〉에서 전체 판(우주의 궤적을 보여주는 일종의 별자리 판)에 각 원이 부쳐지는 방식이나 원 내부는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시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회화나 설치작품이 제시하고자 하는 명확한 서사를 전달하기보다 빛, 색, 형태의 관계 속에서 감정적 분위기와 사유를 유도할 때 그 작품을 “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따라서 시적 표현은 명확한 정보 전달보다 정서적 분위기, 암시, 다의성을 강조하며, 독자나 관람자가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도록 여지를 남긴다. 소통을 전제로 하지만 작가 특유의 관점이 녹아들어 가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점은 ‘객관적’인 관찰의 결과와 작가의 주관적이고 설치하는 과정에서 보태지는 덜 규칙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효과가 그녀의 작업에도 엄연히 공존한다는 것이다. 칸딘스키가 말한 내적 필연성에 빗대서 보자면 7, 24, 365, 그리고 4 절기는 과학적으로 올바르고 규칙적이며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별자리와 같은 동그란 판을 채우고 있는 원, 원 내부의 드로잉은 엄밀히 말해서 불규칙하다. 아니 의식적으로 작가는 불규칙성을 극대화한다. 그녀가 자주 사용하는 재료, 원형을 부치는 위치,대기의 변화를 연상시키는 원형 내부의 색상 변화 등은 불규칙성을 극대화한다.

 

닫힌 세계와 열린 세계의 이중주

김수연의 이중적인 구도를 분석해보기 위해서 프랑스계 미국인 미술사학자이자 모더니스트였던 이브 알랭 보아(Yve-Alain Bois)의 고전인 『모델로서의 회화(Painting as Model)』(1990)에 나오는 두 개의 회화 구조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모더니스트적인 관점의 이 책은 현대미술에 등장한 회화, 혹은 적용해보자면 평면의 구조를 ‘구심적(centripetal)’인 경향과 ‘원심적(centrifugal)’인 경향의 이분법을 사용해서 설명한다. 이 두 구조가 중요한 것은 각기 리얼리티를 접근하는 두 개의 다른 세계관을 각각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예술가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세계, 부연하자면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도 변화하게 된다.

전통적으로 구심적인 회화의 구조는 단적으로 르네상스 이후 서구 회화의 원근법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원근법이 상정하는바 모든 회화 상의 선은 소실점으로 수렴된다.4) 즉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존재를 암암리에 상징하는 듯이 회화는 단일한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현상적으로 관찰 가능한 원근법, 혹은 ‘구심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구현하게 된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만든 세상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지만 모든 세상의 근원은 표면 너머에 존재하는 모든 창작의 근원을 향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7일에 걸쳐 일어난 창조의 여정은 단 하나의 소실점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다. 반면에 소실점이 아닌 화면 밖으로 확장되는 ‘원심적’인 화면 구도는 단일한 세상을 상정하지 않는다. 보아가 예로 들고 있는 원심적인 몬드리안의 회화는 얼핏 정리되고 질서 정연한 세상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반복, 패턴, 모듈을 통해 화면 속 세상은 계속 외부로 확장된다. 원심력의 세상에서 정해진 공간은 없으며 경계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이다. 결과적으로 회화적 공간은 내부로 소멸되는 것이 아닌 외부로 확장되거나 화면 위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김수연의 작품 속 구조는 어떠한가? 김수연은 <Time Flows with Holy Heptagon>(2025)에서와 같이 원판 위에 원을 원의 외곽을 따라 부치고 중심에 다이어그램을 그려놓고는 했다. 칠각형(Heptagon)의 기본 형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필요했던 7개의 숫자를 암시한다. 7개의 선은 소실점을 연상시키는 중심을 향해 모두 모인다. 동시에 7개의 점을 이은 칠각형 주위로 원형의 선이 움직인다. 괘도 근처에서 맴도는 행성과 같이 칠각형 주변으로 원이 배회하게 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알랭 보아가 언급한 닫힌 세계, 모든 것이 한 지점을 향해서 수렴되는 화면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를 암시하는 세계를 연상시킨다고 하겠다. 전통적인 원근법이 상정하는, 종교화가 지속해온 구심적인 구조이다. 태양과 달의 공전과 자전 그리고 그로 인한 빛과 어둠의 교차적인 반복성과 계절에 따른 진화 변이는 우리의 환경과 은하계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이다.

반면에 만약 하나님의 창조 섭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 창조의 역사를 끝난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세계관을 상정해볼 수 있다. 아니 원심력의 세계관은 평면 위의 구조에서나 자연환경을 바라볼 때 규칙성보다는 불규칙성,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혼동과 가변성을 선호한다. 실제로 화면 내 칠각형의 중심이 점차로 모호해진다. 선들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중심에 해당하는 소실점이 더 이상 모든 화면 밖 공간과 일률적으로 이어지지 않게 되는 순간 소실점은 더 이상 절대적인 위치를 점유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특정한 방향에 힘이 실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이때 보는 이의 특정한 위치나 관점을 상상할 수 있다. 절대적인 ‘중심’이 아니라 소실점은 작가의 시, 공간적인 위치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5) 이와 같은 소실점의 이동은 자율적인 의지를 지닌 작가의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하튼 소실점이 중심으로부터 이탈한다는 것은 관찰자의 가변적인 관점도 인정하는 일이 된다.

가변적인 관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각적 요소가 반짝이는 원이 부쳐지는 방식과 소재에 있다. 물론 원이 부쳐지는 위치, 간격들 사이의 어느 정도의 반복성을 발견할 수 있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원은 훨씬 불규칙적으로 부쳐져 있다. 작가에 따르면 실제로 날과 날 사이가 결코 완벽하게 반복적이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원이 내부에서부터 외부로 펴져 가면서 덧붙여져 있다. 외곽선에 있는 원이 가장 나중에 부쳐지면서 흡사 밖으로 나오는 듯한 인상을 준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의 환영을 만들어낸다. 혹은 원은 공간적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공간적인 깊이를 혼동시킨다.

결정적으로 <Time Flows with Holy Heptagon_Reflection>과 <Seasonal Colors_ Iridescent Mini>(2025)에서 김수연이 사용하는 반짝이는 은박지나 홀로그램은 작가가 제시하는 일종의 밑그림, 즉 원들의 배열보다는 원의 표면에 우리의 눈을 이끈다. 반짝이는 은박지는 반사된 외부 환경, 그리고 심지어 관람객의 시점을 반영할 수도 있다. 대기가 만들어내는 외부의 변화가 비치기도 한다. 특히 원들이 전시된 순간에 전시장 내외부의 대기의 변화가 드러날 수도 있다. 관객이 작품을 보기 위해서 화면을 좌우로 움직이게 된다면 관객의 시점에 따라 은박지 위에 다른 자연 현상이 반사되게 된다. 나아가서 홀로그램의 경우 아예 자체 발광체처럼 관객의 움직임 그 자체에 따라 표면을 춤을 추듯이 다른 이미지를 반사해낸다. 작가가 관심을 지녀온 음악, 리듬과의 관계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보아의 회화 구조론에 비추어 보아 김수연의 평면 작업이 혼동되고 혼란스러운 세계관만을 숭앙하거나 평면 위의 독립적인 구도를 생성하기를 꿈꾼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오려진 원형의 색지들이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공간감은 회화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독자적인 평면성과는 달라 보인다. 그런데도 닫힌 소실법적인 공간에 대한 환상을 깨는 다양한 기재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은박지는 빛을 발하면서 밖으로 튀어나온다. 혹은 때에 따라서 어두운 은박지는 뒤로 퇴보하는 듯한 인상을 자아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하루를 최소 시간 단위로 상정하고 그 흐름을 선으로 표시한 <The Depth of Time and the Holy Heptagon>에서도 마찬가지로 표면 위로 수축과 팽창, 들어가고 나오고의 이중적인 일루전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공간적인 일관성을 부정하고 닫힌 세계를 부정하는 방식이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현상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닫힌 세계관을 혼동시키는 기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자신 구성의 출발점으로 여기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지속해서 흩뜨리는가?

 

이방인의 모더니즘

나는 김수연의 시리즈가 굉장히 흥미로운 ‘현대의 종교화’라고 본다. 종교 개혁의 핵심은 결국은 하나님 중심의 사고에서 하나님과 인간 간의 소통으로 강조점을 바꾸는 일이었으며 보아가 이야기하는 구심적인 회화와 원심적인 회화 구도의 혼돈된 상태는 이처럼 닫힌 세계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그녀의 일기와 같은 다이어그램은 실증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시적’인 그녀의 세계관은 개인의 독립적인 경험과 변칙적인 감각을 우선시한다. 인간의 감각이 지속해서 하나님이 만들어낸 세상과 만나면서 자기 경험을 재활용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던, 아니면 그사이의 균형을 고민했던 과거 인류를 연상시키고는 한다. 어차피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지 아니한가?

이 때문에 김수연이 작품에서 7이라는 숫자와 같이 반복된 시간, 계절, 자전과 공전의 주기는 중요하다. 기본 구조야말로 그녀가 변조를 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의 관점에 따른 결과를, 혹은 관객 스스로가 경험한 시 공간의 조건도 중시한다. 독일에서 여성 작가로서 활동해 온 그녀의 차별적인 관점도 중요하다. 모든 천문학의 관점이, 적어도 현재 과학계에서 진행된 시점이 서구 중심적이었다면 그녀는 아시아에서, 한국에서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관찰한 시간대를 넣어 놓는다. 이때 그녀의 존재감은 반짝이는 은박지에서처럼 어느 한 시점이 아닌 다양한 시점에서 빛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의 눈을 이끈다. 그리고 우리는 관객은 우리 자기 모습을 원 안에 비추기도 한다.

김수연의 작업이 드로잉, 평면 콜라주, 사운드 아트의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이러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드로잉은 그녀의 손으로 직접 그렸을 때 그녀의 시점을 보여준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하나하나 원을 붙일 때 작가의 노동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자기 작품이 사진에 의해서 기록될 때 고민된다고 토로하는데 그것은 사진이 태생적으로 어느 특정 시점을 고정하고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원래 텍스타일 전공자이기도 했던 작가로서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한 실이 다른 실로 연결되듯이 우월한 시점이란 있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대안적인 관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그녀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전시를 통해서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그녀가 철저하게 수동적인 입장에서 천지창조의 섭리를 공부하려고 했다면 반짝이는 은박지나 홀로그램은 인간의 감각을 자극한다. 흑백의 드로잉이 구조를 다룬다면, 반짝이는 표면은 색과 움직임을 다룬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표면을 관찰하는 관객의 시점, 그가 위치한 특정한 조건이 중요해진다. 결과적으로 우월적인 작가적 시점이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모든 경험이 상대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열린 세계관이 등장한다.

김수연의 최근 행보는 그녀의 작업 세계가 지닌 열린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음악 작업이나 다른 장르와의 협업은 그녀의 작업에 시간성(time)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색채와 소리는 모두 고정된 구도를 벗어나 확장되는 특성을 보이며, 이러한 특성은 시적 표현에 적합한 열린 구조를 가능하게 한다. 드로잉에서 자연을 관찰하며 손으로 긋고 기록하는 반복적인 행위가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소리 또한 리듬과 반복, 그리고 일정한 체계를 통해 형성된다. 동시에 소리는 공간 속으로 울려 퍼지며 인간의 감각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데, 칸딘스키가 말했듯이 소리는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영혼을 움직이는 힘을 지닌다. 칸딘스키가 이러한 개념을 강조한 배경에는 20세기 초 광학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다양한 시각 이론들이 있었다. 당시에는 인간의 시각 경험을 과학적·물리적으로 분석하고 현상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했는데, 칸딘스키는 이러한 태도가 예술의 정신적 차원을 축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같은 시기 철학에서는 현상학이 등장하여 인간 경험의 가변성을 신체와 감각, 심리의 복합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려 했다. 인간은 단순히 보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감각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달과 해의 움직임과 같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주의 원리를 체득하려는 김수연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인간 내부의 감각과 경험으로 향한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우주의 질서를 이해할 가능성을 지니는 동시에, 독립적이고 새로운 감각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20세기 현대음악이 기존의 조성 체계로부터 이탈하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청각 경험을 탐구했듯이, 김수연의 작업 역시 체계와 질서, 그리고 그로부터의 이탈 사이에서 전개된다. 그녀는 색채와 구조, 그리고 최근에는 소리를 통해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며, 인간의 지각이 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할 수 있기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실내건축 디자이너에서 순수미술가로 전환하고, 한국에서 독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경험은 그녀의 작업이 놓인 문화적·지리적 맥락을 확장하며, 이러한 탐구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을 제공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1) Veronica Weinberg, “Interview with Soo Youn Kim,” Contemporary Art Curator (online journal), 2025; www.contemporaryartcuratormagazine.com/home-2/soo-youn-kim (2026년 3월 20일 접속).

2) 예술 창작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면서 “내적 필연성의 법칙(law of inner necess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그의 대표적인 미술 이론서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관하여(Concerning the Spiritual in Art)』(1911)의 주된 요지이며 예술가는 색과 형태를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직관을 통하여 보편적인 법칙을 현현할 수 있도록 나아가는 존재이며 자율성과 보편성, 창작과 원칙의 양면성은 김수연의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Kandinsky, Wassily. Concerning the Spiritual in Art (New York: Dover Publications, 1977, 초판 1911), pp. 23–27.

3)김수연, 저자와의 이메일 서신, 2026년 3월 11일.

4) Yve Alain Bois, Painting as Model (Cambridge, MA: MIT Press, 1990), pp. 222–224, 230.

5) 작가는 달과 해의 궤적과 시간을 관찰할 때 계절의 변화와 함께 아시아나 유럽 등의 특정 관찰자의 시점을 다이애그램의 한쪽에 기입하고는 한다. 이것은 기록의 조건을 명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인 측면에서 절대적인 시점이나 관점을 부정하기 위한 방편이라고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