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아
LEE Shina
b.1991
Biography
- 2019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조형예술 석사
- 2017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 조형예술 학사
- 2019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Fine Art, MFA
- 2017 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 Fine Art, BFA
Exhibition
- 2020 개인 <상 생 . 선>,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 2019 개인 <Vivre Mutuelle(reve)>, Atelier Guillaume Paris, 파리
- 2026 단체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 갤러리뜰, 고양
- 2020 단체 <유연한 경계>,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 2019 단체 <Prix du dessin contemporain>, Galerie droite ENSBA, 파리
- 2020 Solo <Mutual Living . Line>, Daegu Art Factory, Daegu
- 2019 Solo <Mutual Living (reve)>, Atelier Guillaume Paris, Paris
- 2026 Group <Oh! My heart is racing as the time has come!>, Galerie Tul, Goyang
- 2020 Group <Flexible Boundaries>, Daegu Art Factory, Daegu
- 2019 Group <Prix du dessin contemporain>, Galerie droite ENSBA, Paris
Critique
사물의 풍경에 잠재한 우주 신체
김성호 (미술평론가)
이신아의 작업은 흑연과 과슈를 매체로 삼아 종이 위에 수평과 수직의 직선, 때로는 유기적 곡선이 교차하는 평면 회화를 선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화면 내부의 조형적 하모니를 자족적으로 구축하는 추상 회화의 관행을 따르기보다, 작가가 대면한 자연과 사물의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비구상의 양태로 전환하는 데 더 큰 관심을 둔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업은 형식주의적 추상이 아니라, 자연물과 인공물, 현실과 가상, 빛과 잔상이 중첩된 오늘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번역하는 추상적 회화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신아의 작업이 출발하는 지점을 ‘자연 풍경 혹은 사물 풍경’으로 읽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사물의 살 혹은 우주 신체’의 문제의식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울러 ‘남겨진 빛, 운동하는 빛’의 차원에서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교차하는 이신아 회화의 ‘미적 현상학’을 해설한다.
I. 순환하는 자연 풍경, 또는 채움과 비움의 사물 풍경
이신아의 작업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하는 자연은 전통적 의미의 순수 자연이기보다, 자연물과 인공물이 혼재하고 현실과 가상이 중첩되는 복합적인 세계다. 작가 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녀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혼합되어 공존하는 세상”의 경계를 탐구한다. 곧 사물 안으로 들어가 면밀히 관찰하고, 다시 사물 밖으로 나와 먼 거리에서 그것이 점처럼 사라지는 순간까지 응시하는 방식을 거듭한다. 이처럼 근경과 원경, 세부와 전체, 감각과 구조를 오가는 시선의 왕복 속에서 풍경은 더 이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와 운동, 생성과 소멸의 장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에게 풍경은 눈앞의 장면이기보다 사물들이 서로 얽히고 스미며 드러나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이 지점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두 실체로 보기보다, 만물이 하나의 기운 속에서 서로 감응하고 변화한다고 보아 온 동양의 자연관과도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은 고정된 외부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운동하는 기(氣)의 흐름이며, 인간의 시선 또한 그 흐름 안에 함께 놓인 감응의 한 국면이 된다. 이처럼 이신아의 ‘자연 풍경 혹은 사물 풍경’은 사물의 외형보다 그 안에 깃든 기운과 운동, 그리고 ‘관계의 결’을 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인식은 흑연과 과슈를 사용하는 그녀의 흑백의 평면 작업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흑연을 수차례 비벼 올려 만들어진 부드러운 농담, 반복적으로 중첩된 선의 흔적, 수평과 수직의 구조적 직선, 그리고 손의 떨림을 머금은 유기적 곡선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공존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순히 화면의 균형미를 위해 배치된 것이라기보다, 자연과 사물의 형상에서 추출된 운동감과 밀도, 방향성, 진동을 화면 위에 번역하는 과정에서 호출된 조형 언어이다.
따라서 이신아의 작업에서 ‘선’은 윤곽을 확정하는 선이기보다 대상이 생성되고 흩어지며 응집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선이며, ‘면’은 외형을 채우는 배경이기보다 시간과 운동이 머물고 번져 가는 층위가 된다. 이는 동양 회화가 대상을 외형의 모사로 붙드는 대신, 필선의 운행과 먹의 농담을 통해 사물의 기세와 생동을 포착하고자 했던 태도와도 통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신아의 ‘선’은 단순한 조형 요소로 머물지 않고, 자연과 사물 안에 잠재한 기의 흐름과 생동하는 리듬을 드러내는 ‘자라는 흔적’이라고 하겠다.
결국 이신아의 작업은 현실을 떠난 순수 형식의 유희가 아니라, 사물 풍경을 통과하고 남은 감각의 구조이자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한 시각적 번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는 자연을 대상화된 외부로 보지 않고 인간과 세계가 하나의 질서 속에서 서로 응답한다고 보는 동양적 사유가 은연중 작동한다. 따라서 그녀의 추상은 자연을 지운 추상이 아니라, 순환하는 자연의 생성 원리와 사물의 관계적 질서를 화면 안에서 다시 호흡하게 만드는 개념적 추상이다.
작품 〈빈공간 3(1)〉과 〈빈공간 3(3)〉을 살펴보자. 두 작품 모두 종이 위 흑연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중앙 혹은 하단부에 가느다란 선들이 밀집해 응축된 어두운 덩어리와 그 주변으로 탈주해 나가는 수직적 선들의 진폭이 어우러진다. 〈빈공간 3(1)〉에서 중심의 짙은 흑연 덩어리는 마치 안개 속에 떠 있는 사물의 핵처럼 보이고, 그 위아래로 희미하게 반복되는 직선들은 어떤 구조물의 잔흔이면서 동시에 낙하 혹은 상승의 흐름을 환기한하게 만든다. 반면 〈빈공간 3(3)〉은 보다 비대칭적인 덩어리와 옅고 얇은 필선들이 결합되면서, 무엇인가 형성되는 중이거나 이미 해체된 뒤 남은 풍경의 운동 사이를 오간다.
이 두 작업에서 흥미로운 것은 형상의 명확한 정체가 아니라, 사물의 존재가 응축과 확산, 출현과 소멸의 과정 안에서 지각된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신아는 자연과 사물을 재현하기보다, 사물이 세계와 접속하며 드러내는 생동의 흔적을 추상적 구조로 전환한다. 이는 동양 미학에서 말하는 형사신(形似神), 곧 외형의 닮음보다 그 안의 정신과 기운을 붙드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재현된 풍경이 아니라 사물의 기운이 화면 안에서 진동하는 풍경인 셈이다.
또 다른 작품인, 2025년 작 〈다가온다〉는 이신아가 최근에 이르러 자연 풍경과 사물 풍경을 더욱 압축된 비구상의 구조로 이행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다가온다〉는 화면 위에 수평으로 배열된 밝은 띠와 하단의 어두운 직사각형 덩어리가 놓여 있는데, 이는 풍경의 특정 대상을 지시하기보다 빛에 의해 인지되는 구조와 접근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같은 시기의 〈통과〉나 〈유희(pleasant conversation)〉는 밝은 사각형과 수직의 막대, 수평의 빛줄기 같은 요소들을 통해 문, 통로, 문턱과 같은 구조를 연상시키면서도, 그것을 어디까지나 통과와 이동, 출현과 이행의 감각으로 환원한다. 특히 작품 〈유희〉에서 화면 속 여러 사각형과 선분들은 마치 서로 대화하듯 배치되는데, 이는 제목처럼 ‘즐거운 대화’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세계를 구성하는 사물들이 서로 관계 맺고 반응하는 우주적 리듬을 암시한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에서 ‘밝은 빛의 창’처럼 보이는 직사각형 도상은 오랜 시간을 들인 지난한 노동 끝에 촘촘하게 쌓아 올렸던 흑연 층을 다시 지워 냄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채움에서 비움을 실현하면서 이루어진 ‘채우고 지운 그림’인 셈이다. 대개는 날카로운 면으로 지워진 도상이 자리하지만, 때로는 흑연 층을 지운 표면 위에 ‘그려졌었음’이라는 사건의 흔적을 아스라이 남기고 있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는 비워진 면 아래 짙은 그림자 같은 형상을 채워 넣거나, 흑연을 비벼 올린 어둠 위에 다시 가느다란 선들을 촘촘히 채워 올리거나, 흑연층 위에 흰색 물감으로 선을 그어 넣어 비움의 효과를 만드는 식의 다양한 회화의 변주를 시도한다.
그녀의 이러한 회화는 골과 마루, 어둠과 밝음, 채움과 비움, 생성과 소멸, 존재와 부재가 대조를 이루면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순환하는 관계의 지형도를 만든다. 그것은 자연을 인간 바깥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하나의 우주적 호흡을 이루는 존재로 이해해 온 동양의 자연관과도 접점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작업은 ‘순환하는 자연의 풍경, 또는 채움과 비움의 사물 풍경’을 감각적으로 번역하는 작업이자, 만물이 서로 감응하고 생성 변화하는 세계의 리듬을 더듬는 회화적 사유라고 평할 만하다.
II. 사물의 살 혹은 우주 신체
이신아의 작업에서 핵심을 이루는 조형적 원리는 ‘흐름’과 ‘연결’이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는 이 두 요소가 자신의 작업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고 밝힌다. 실제로 그녀의 화면에서 ‘선(線)’은 사물의 외곽을 닫는 윤곽선이기보다, 사물과 사물 사이를 통과하고 형상과 형상 사이를 이어 주는 맥박이며 파동이 되기를 지향한다. 때로 그것은 바람의 궤적처럼, 때로는 우주의 운행처럼, 때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분출처럼 다가온다. 이 선은 형태를 확정하기보다 형태를 열고, 대상을 고립시키기보다 존재들 사이의 접속과 스밈을 가시화하는 존재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이신아의 작업은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살(chair, flesh)’ 개념과 만난다. 메를로-퐁티에게 살은 인간 육체의 물질성뿐 아니라 사물의 물질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 보는 자와 보이는 것, 몸과 세계를 나누기 이전의 공통된 감각적 직물이자 ‘사물의 살’이다. 세계는 내 앞에 놓인 대상들의 총합이 아니라, 나와 세계가 서로 침투하고 반향하는 하나의 장이지 않던가? 이 관점에서 보면, 이신아의 조형 언어인 ‘선’은 사물의 표면을 묘사하는 선이 아니라 ‘사물의 살’ 또는 ‘세계의 살’이 스스로를 접고 펼치며 드러내는 흔적이다. 아울러 그녀가 사물의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신체’란 자연과 사물,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가상이 서로 얽혀 이루는 세계의 신체성, 곧 우주적 신체라 부를 만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신아가 세계를 단단히 고정된 물체들의 집합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의 화면에서 사물은 늘 형성과 해체의 중간 상태에 놓여 있으며, 어떤 것은 출현하는 동시에 소멸하고, 어떤 것은 응축되는 동시에 흩어진다. 이것은 메를로-퐁티가 말한 ‘교차(chiasme)’의 개념과도 상응한다. 보는 자와 보이는 것, 만지는 자와 만져지는 것은 서로 분리된 두 항으로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으로 스며들며 교직된다. 이신아의 화면 역시 이러한 교차의 장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작품 앞에 선 관객은 흑연의 농담과 선의 진동, 빛의 흔적과 여백의 호흡에 의해 다시 감각되는 존재가 된다. 다시 말해 그녀의 작업은 사물의 풍경을 단순히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과 나, 세계와 몸이 서로를 비추고 스며드는 감각의 현장을 경험하게 한다. 바로 그 점에서 이신아의 회화는 사물의 외형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사물의 살이 나의 감각과 만나는 접촉면을 열어 놓는 그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 2020년 작 〈무제〉다. 이 작품은 종이 위에 흑연으로 된 자유로운 선들과 수직 직선의 구조가 겹치면서 응축된 검은 덩어리들이 마치 세포나 기관처럼 떠오르듯이 표현되었다. 그것은 산 능선과 같은 자연 풍경이나 인공의 사물 풍경에서 발견되는 ‘사물의 살’이 품은 유기적 곡선과 직선들이 교차하고 만나는 장이다.
또 다른 작품, 2025년 작 〈빈공간 1-1〉과 〈빈공간 1-2〉를 보자. 이 두 작업은 3D 프로그램을 활용한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제시한 작품으로, 중심에 수직적으로 솟아오른 구조물이 주변의 흐릿한 공간과 겹치며 떠오른다. 이 구조물은 건축적 형상을 닮았지만, 동시에 하나의 몸통이나 기관, 혹은 빛과 선이 응축된 우주적 신체처럼 보인다. 특히 〈빈공간 1-1〉의 중앙 구조는 검은 중심과 주변의 흐린 공간을 통해 내부와 외부, 실체와 그림자, 몸과 환경의 관계를 동시에 호출하고, 〈빈공간 1-2〉는 보다 비어 있는 중심을 통해 존재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비워지고 채워지는 감각적 장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이신아의 작업에서 신체는 ‘닫힌 몸’이 아니라, 세계의 살이 스스로를 조직하며 펼쳐 보이는 열린 신체가 된다.
나아가 이신아의 작업 속 신체성은 단지 유기체적 은유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매체의 차이 속에서도 지속되는 감각의 구조로 확장된다. 흑연이 만들어 내는 밀도와 침잠의 효과, 과슈가 유도하는 밝은 발색과 빛의 층위, 그리고 3D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된 가상 공간의 구조성은 서로 다른 차원의 감각을 호출하지만, 이질적인 채로 흩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하나의 화면 안에서 서로를 번역하며 신체의 복수적 층위를 형성한다. 손으로 문질러 남긴 흔적과 디지털 구조의 정제된 공간감이 한 작가의 작업 안에서 병존한다는 사실은, 이신아가 신체를 단순히 생물학적 몸으로 보지 않고 감각, 구조, 기억, 공간이 서로 포개지는 장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우주 신체’는 살아 있는 유기체의 은유인 동시에, 물질과 비물질, 촉각적 흔적과 가상적 구성, 내면과 외부 환경이 함께 얽혀 이루는 확장된 감각의 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신아의 드로잉에 기반한 회화는 자연 형상에서 출발했음에도 결국 특정 대상의 재현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 풍경 속에 잠재한 살의 결, 세계의 감각적 조직, 우주적 리듬의 흔적을 가시화하는 조형적 사건으로 읽힌다. 그녀의 회화는 “사물들의 풍경에 숨은 우리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는 작가의 진술처럼, 사물과 인간, 자연과 세계 사이의 간극을 줄이면서 존재를 하나의 공통된 감각적 직물로 재사유하게 만든다.
III. 남겨진 빛, 운동하는 빛 —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교차
이신아가 집요하게 탐구하는 또 다른 핵심은 ‘빛’과 ‘잔상(afterimage)’이다. 작가 노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자연에서 빛은 태양과 달로, 인공에서는 전구와 발광 물질로 나타난다. 이질적인 두 빛은 대립하기보다 오늘의 사물 풍경 안에서 혼합되고 공존한다. 작가는 사물이 어떤 빛에 의해 비추어져 인지되는지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 빛이 사라진 뒤에도 눈과 기억 속에 남아 지속해서 진동하는 잔상의 시간을 붙든다. 그러므로 그녀의 화면 속 희미한 밝음, 번지는 농담, 소실되는 선의 흔적은 시간이 신체 안에 남기는 감각의 흔적인 셈이다.
이신아의 작업에서 잔상은 지나간 빛이 남겨 놓은 기억의 형식이며, 이미 사라진 것이 여전히 감각 속에 머무는 시간의 구조를 은유한다. 다시 말해 잔상은 한순간 지나가 버린 현상이 아니라, 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더 분명해지는 감각의 여운이다. 작가가 포착하는 것은 눈앞에 강하게 드러나는 빛 그 자체라기보다, 그 빛이 지나간 자리에서 되살아나는 잔존의 운동이다. 따라서 그녀의 화면은 현재의 장면을 보여 주는 동시에, 이미 지나간 시간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까지 함께 품는다. 빛은 순간적인 현전으로 머무르지 않고, 기억과 지각 속에서 재편되며 다시 운동하는 시간의 매질이 된다.
메를로-퐁티의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개념은 이러한 작업을 해석하기에 유효하다. 그의 철학에 따르면, 가시적인 것은 단순히 눈앞에 드러난 현전의 총합이 아니며, 언제나 비가시적인 것에 의해 떠받쳐진다. 비가시적인 것은 가시적인 것의 바깥에 놓인 공허가 아니라, 보이는 것의 이면에 잠복한 깊이(profondeur)이다. 이신아의 화면은 이러한 관계 위에서 작동한다. 형상은 보이지만 완전히 드러나지 않고, 나타나지만 고정되지 않는다. 흑연의 짙고 옅은 층위는 형상을 부각하는 동시에 흐리게 하며, 그 너머의 심연을 열어 놓는다. 선은 존재하지만 늘 사라짐의 가능성을 품고 있고, 사라진 자리에는 비어 있음 대신 또 다른 감각의 ‘잠재성’이 머문다. 그녀의 화면은 무엇인가를 명료하게 보여 주는 창이 아니라, 보이는 것의 내부에 보이지 않는 것을 머물게 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신아의 빛은 물질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비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으로 그것은 화면 위의 밝기, 농담, 대비, 표면의 차이를 통해 구체적으로 감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결코 완전히 붙들리지 않은 채 어떤 여운과 암시로 남는다. 즉 빛은 보이는 것이면서도 보이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사물의 표면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표면의 저편을 열어 놓고, 형상을 인지하게 하면서도 그 형상을 해체의 방향으로 이끈다. 이신아가 다루는 빛은 대상의 외곽을 또렷하게 부각하는 조명이 아니라, 대상을 드러냈다가 다시 흐리게 하는 리듬이며, 존재를 고정하기보다 계속해서 유예하는 감각의 파동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작업에서 빛은 재현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서로 교섭하는 사건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특성은 2025년작 〈녹색광선 Rayon vert〉과 〈From A to B〉에서 잘 드러난다. 세 점으로 구성된 〈녹색광선〉은 부드럽게 번지는 흑연의 농담 위에 미세한 수평선과 표면 위에 덮인 흑연을 지워서 만든 중앙의 밝은 구조가 놓여 있는데, 제목이 암시하듯 빛은 여기서 물리적 조명이 아니라 어떤 현전의 순간, 혹은 지각의 임계점으로 기능한다. 빛은 사물을 드러내되 완전히 설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보이는 것의 배후에 머무는 잔상을 관객에게 환기한다. 〈From A to B〉는 3Ds Max를 활용한 프린트 작업으로,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수직의 선들과 그것을 감싸는 곡선형 구조가 두드러진다. 이 작품은 경로와 이동, 출발과 도착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넘어, 빛과 공간이 서로를 통과하며 형성하는 비가시적 흐름을 시각화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선과 구조이지만, 실제로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운동과 깊이이다.
여기에 2025년 작 〈다가온다〉와 〈통과〉를 함께 놓고 보면, 이신아의 빛은 정지된 광원이 아니라 운동하는 빛, 남겨지는 빛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다가온다〉의 수평적 밝은 구조는 어떤 사물이 빛에 의해 점차 가까워지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그 아래의 어두운 덩어리를 통해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비가시적 깊이를 남겨 놓는다. 〈통과〉는 사각형과 수직선, 수평선의 배열을 통해 빛의 통로 혹은 감각의 문턱을 연상시키며, 관객에게 보이는 것의 표면을 넘어 그 이면의 시간성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때 빛은 단순히 비추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사라진 이후에도 신체와 기억 속에 남아 세계와 나 사이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감각의 매질로 작동한다.
더 나아가 이신아의 회화 속 빛은 화면을 하나의 장소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하나의 시간적 사건으로 변환한다. 빛은 화면 위에 정지된 채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도달하고, 스치고, 사라지며, 다시 남겨진다. 그러므로 그녀의 그림은 ‘빛을 그린 그림’이라기보다, 빛이 지나가며 남기는 운동의 흔적을 붙잡은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흔적은 관객에게 한순간에 화면을 파악하게 하지 않고, 천천히 응시하며 그 안의 미세한 차이와 지연을 더듬게 만든다. 밝음과 어둠, 드러남과 감춤, 선명함과 흐림 사이에서 시선은 머뭇거리며 이동하고, 바로 그 지연 속에서 비가시적인 것이 감각되기 시작한다. 즉 이신아의 회화는 빛을 통해 사물을 보여 주면서도, 동시에 사물이 완전히 붙들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장이 된다.
이러한 관계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교차(chiasme)’의 개념을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교차란 주체와 객체, 몸과 세계,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서로 대립하는 두 항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 얽히고 교직되는 관계의 방식이다. 이신아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교차의 장이다. 관객은 화면 앞에서 대상을 감상하는 주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빛의 떨림과 선의 호흡, 농담의 진동에 의해 다시 감각되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그녀의 화면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라, 세계와 몸이 서로를 반사하고 침투하는 감각적 현상학의 장으로 열린다.
이때 관객의 지각은 수동적인 수용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 앞의 관객은 무엇이 보이는가를 확인하는 동시에, 왜 그것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가를 경험한다. 이중의 경험 속에서 보는 행위는 단순한 인식의 작용이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왕복하는 감각적 참여가 된다. 이신아의 작업이 관객을 하나의 해석자로 세우기보다, 하나의 지각하는 몸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까닭이다. 관객은 빛의 흔적을 따라가며 화면 속 공간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시선이 다시 조직되는 과정을 겪는다. 결국 그녀의 그림은 어떤 대상을 보여 주는 이미지라기보다, 보는 행위 자체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드러내는 현상학적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이신아의 빛은 단순히 화면을 밝히는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세계와 몸, 기억과 현재,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서로 교차하게 만드는 감각의 매질이다. 빛은 사물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라지게 하고, 형상을 인지하게 하는 동시에 그 이면의 깊이를 열어 놓으며, 현재를 현전시키는 동시에 과거의 잔상과 미래의 예감을 함께 불러낸다. 그러므로 이신아의 작업에서 빛은 곧 관계의 운동이며, 시간의 호흡이며, 세계가 스스로를 감각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다. 그녀의 화면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나는 자리, 곧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스치고 지나가며 하나의 사물 풍경을 다시 구성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에필로그
결국 이신아의 작업은 사물의 풍경 속에 잠재한 운동과 시간, 빛과 기억, 흐름과 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의 살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을 추출하는 작업이다. 그녀의 선은 설명의 선이 아니라 호흡의 선이며, 그녀의 화면은 형상을 정착시키는 장이 아니라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이 서로를 비추고 스며드는 장이다. 흑연의 농담과 그 위에 올라선 과슈의 흰색 선묘, 수평과 수직의 구조적 긴장, 유기적 선묘의 즉흥성이 중첩되는 화면 앞에서 관객은 하나의 완결된 형상을 소비하는 대신, 세계와 자신이 하나의 감각적 직물 속에서 서로 얽혀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곳에서 사물의 풍경은 곧 사물의 살이 되고, 그 살은 다시 세계의 신체이자 우주의 신체로 확장된다. 이신아의 작업은 바로 그 교차의 순간, 보이는 것의 표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호흡하고 진동하는 순간을 가시화하는 ‘드로잉적 사유’를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더듬어 나간다. (2026.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