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 2010 시카고 예술대학교, 프린트미디어학과, 석사
- 2002 홍익대학교, 판화과, 학사
- 2010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Printmedia, MFA
- 2002 HongIk University, Printmaking, BFA
Exhibition
- 2024 개인 <빛 이후 표상>, 서초문화재단 서리풀휴갤러리, 서울
- 2023 개인 <얇고판판한 상>, 미사장갤러리, 서울
- 2021 단체 <내일전_Drag and Draw>, 소마미술관, 서울
- 2020 단체 <영은지기> 영은미술관, 경기
- 2019 단체 <Young Korean Artists>, Purdue University & 주미한국대사관, 인디애나, 미국
- 2024 Solo < Representation of Light>, Hue Gallery, Seoul, Korea
- 2023 Solo <Thin and Flat Image>, Misajang Gallery, Seoul, Korea
- 2021 Group <Drag and Draw>, Seoul Olympic Museum of Art, Seoul, Korea
- 2020 Group <Young&Young Artist Project>, Youngun Museum of Art, Gyeonggi, Korea
- 2019 Group <Young Korean Artists>, Purdue University, Indiana, US
Critique
황량한 기억의 표상
현대도시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문화나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자유로운 공간이다. 그러나 서로의 관계를 결속하는 심리적 유대가 부재하다는 점에서 고립적이며, 전인적인 접촉이 어렵고 외면적인 기준에 의해서 행동하고 평가된다는 점에서 익명적이다. 어린 시절 요람처럼 편안했던 무의식적 공간은 이제 비인간화된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군중들의 거처다. 이제 도시는 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에게 무관심한 소외의 공간이자 결핍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민정See는 인간보다는 도시 환경과 그 현상에 주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빛 이후 표상
민정See는 도시에서 인간보다는 새로운 자연을 발견하고 그 현상에 주목한다. 빛은 도시공간의 어둠에 순차적으로 침투하여 대상을 밝히고 그 대상들은 이에 반응하여 형태를 만들어 낸다. 빛이 대상을 투사하여 만들어 낸 형상들은 강한 회화적 매력을 발산시키며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한다. 그가 표상하는 이미지들은 “어둡던 공간에 빛이 들어오고 그림자가 아른거리며, 일상의 공간이 빛과 함께 살아나는 것 같은 순간의 기억에 대한 것이다. 외부로부터 안으로 침투하는 빛의 현현과 같은 평범했던 일상의 공기를 순식간에 바꾸는 바람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무엇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현실 이면에 끊임없이 반응하고 박동하는 내면이 존재하듯이, 빛은 공간을 비추고 색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는다.”
주지하다시피 민정See가 포착한 도시는 화려한 현대도시의 외연보다는 그 이면이 내포한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풍경이다. 빛과 그림자가 아슬아슬한 경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시멘트 틈 사이에서 양분과 빛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잡초의 모습, 나무그림자가 구름처럼 수 놓인 보도블록 위를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은 생명성과 회화성의 간극에 존재하는 또 다른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민정See의 <빛 이후 표상> 연작은 하나의 사물을 통해 다른 사물을 사유케 하는 작품들, 또는 경물들을 일반적이지 않은 각도에서 관찰한 것들이 많다. 이는 그가 해당 사물들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특이한 시점들을 암시적으로 표상하는 접근법이다. 아울러 이는 개별 대상의 구조나 형태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사이의 내적 긴장과 숨은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들일 수도 있고, 심각한 뉴스일 수도 있고, 나 외에 다른 것들을 무감각하게 못 본 척하며, 열심히 빠르게 걸어온” 도시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실재론(實在論)이라기보다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기호의 ‘매개적 관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재론이 아니라 관계론적 접근인 것이다. 실제로 거기에 살아간다는 것, 즉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단순히 현재의 한순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중첩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뜻한다. 민정See의 작품에서 이는 고전과 현대, 자연과 문명을 대립적 관계로 보기보다는 상보적 관계로 봄으로써 언제든지 선별선택이 가능할 것이라는 문명적 낙관론으로 비쳐진다.
앵포르멜 추상의 분방함과 기하학 추상의 엄격함을 동시에 포괄하는 민정See의화면은 회화적 감동보다는 공간이 지닌 도시적 의미와 여전히 자연일 수밖에 없는 도시 이면의 생태적 현상들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그것은 “도시의 다양한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관심이자 지금의 환경과 우리가 형성한 도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민정See의 작업은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논의 될 수 있는 다양한 미적 실험과 시적 서사가 존재한다. 창가에 놓인 화분에 투사된 빛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그것처럼 형태를 정의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빛을 머금은 마루와 그렇지 못한 마루의 창호는 생기(生氣)면에서 강한 대조를 보여주고 빛에 의해 표상된 형태는 역설적 활기를 뿜어내며 존재를 과시한다. 그것은 존재 이전의 모습을 유추케 하는 동력이자 존재의 참모습을 피력하는 언어이며, 존재 이후의 모습을 예견케 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대상을 표상하는 방식은 물론 보여주는 방식에도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작가는 화면의 구조나 형태에서 가치를 찾으면서도 상징적 은유, 추상화와 암시, 주체자와 개별자, 기능적 관점의 역설 등 관념적이고 입체적인 분석 단위들을 설정하고, 각 이미지 사이에 조합되는 유기적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얇고 판판한 상
민정See가 포착한 또 하나의 모티브는 차가운 실내의 무심한 풍경들이다. 그동안 회화가 즐겨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생소한 각도에서 무채색조로 담아낸 그의 <얇고 판판한 상> 연작은 재현예술이 주는 매력이나 회화가 우리에게 어필해 온 감동과는 일정 거리를 유지케 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예술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생경함이 경험을 명료하게 해줌으로써 기억을 소환하여 대상이 지닌 미증유의 미적 가치를 되새기도록 부추기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적 색채가 짙은 그의 회색 풍경은 실재 공간이지만 인공적 처소로써 시끄러운 사건이 없는 평온한 상태의 심리적 풍경이자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현실적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기에 집착하기보다는 대상이 존재하고 있음에 가치를 둔 듯한 그의 화면은 회화적 아우라가 생동하고 풍경이 지닌 장소성과공간의 의미가 드러나 보이는 침잠된 생명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민정See는 재현된 대상보다는 형상의 흔적을 드러냄으로써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거나 대성의 존재 형태를 날것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공간이 지닌 생명성에 호응코자 하는 듯하다.이는 작가가 면밀하게 형태의 의미를 탐구하고 치밀한 공간구성과 빛의 파장과 속도에 따른 형태의 변화를 숙지하여 작업하는 그의 과학적 태도와 장인적 접근방식에 기인한 것이다.
민정See의 <얇고 판판한 상> 연작들은 마치 단색조의 모더니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분명히 집안 특정한 장소를 표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정See는 이러한 형상을 통하여 풍경대상의 외형을 재현하기보다는 빛의 변주와 형태의 실험, 그리고 구상과 추상의 진화도식을 통하여 새로운 조형성을 발견하고자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대상의 연구와 부단한 자기반성의 작법으로 물질의 세계와 비물질의 영역을 넘나드는 민정See의 작업은 외연적 욕망과 내면적 자기 성찰을 암암리에 드러내면서 진정한 회화적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오랫동안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을 고민해 왔을 뿐 아니라 대상이 지닌 사회적 · 인문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이를 풍경 이상의 가치로 재현해 내는 것이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개체의 형상성을 극복하여 그 본질에 대하여 되묻는 작가의 미적 욕망은 결국 기억으로만 남게 되고 여전히 공간에서 강한 힘을 발산하고 있는 그의 화면은빛과 대기를 머금으며 존재를 드러내고 스스로 생동하면서 미적 가치를 위해 쏟은 작가적 노고를 부각시킨다.
구상과 추상, 서사와 서정, 표상과 암시가 공간적 제약 없이 존재하면서 형상 자체를 하나의 공간적 모티브로 취급함으로써 그 의미는 부차적으로 밀려난다. 그런데도 민정See의 예술에서 그림자 형상이 지닌 힘은 여전히 막강해 보인다. 그 형상은 원본을 매개하고 존재를 사유케 하며, 소통을 유발하는 강력한 전언 매체이자 관계성의 총체이기 때문이다. ‘관계성’은 더불어 살기 위한 공존과 사이 맺음이다. 작가는 오랜 기간 인문적 관점에서 다루었던 ‘인간과 도시’에 대한 작업의 일환으로 도시적 삶의 본질이 상징하는 사물들과 빛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그 앞에선 존재의 근원적 물음을 각종 문명적 편린이나 인공물을 통하여 해답을 모색하고 있다. 그는 “도시 환경에 의해 형성된 개인의 생각, 감정, 심리 등 내적인 것들에 관심은 물론, 무엇이 우리를 지나치게 둘러싸고 있는지, 무엇을 우리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소비하는지 생각한다.”
결국 민정See에게 있어 회화라는 것은 형태의 재현이라기보다는 한 의미론적 가치에 주목하여 이에 맞는 형태를 찾아내거나, 한 형태에서 또 하나의 형태로 의미를 바꾸어 놓는 작업이라는 단정도 가능하다. 이때 캔버스라는 한정된 사각틀 안에 일정 형태를 표상하기 위하여 대상의 변주나 색의 단순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빛의 힘을 빌린다던가 생경한 대상을 수용함으로써 작가의 진실한 영혼이 작품에 투사된다. 작가는 격정을 억제하고 이지적인 사색에 의한 제작으로 역동성이나 긴장미를 제어하는 대신, 기억이라는 가치를 미적 긴장성으로 풀어내는 관조자의 위치로 거듭나게 된다.
이경모/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