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월
PARK Siwol

b.1993

물이 담은 것 | 2025 | 종이에 연필, 유리에 은거울 | 145.5 x 112.1cm

물이 담은 것 | 2025 | 종이에 연필, 유리 | 50×40cm

조난 | 2024 | 종이에 연필, 파스텔, 유리 | 162.2×112.1cm(×3개)

Biography

  • 2020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수료
  • 2018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 2020 Kyung Hee University, Graduate School, Fine Art, MFA (Coursework Completed)
  • 2018 Kyung Hee University, College of Fine Arts, Fine Art, BFA

Exhibition

  • 2024 개인 <허공에 뜬 그림자>, 얼터사이드, 서울
  • 2023 개인 <본 적도 없으면서>, 유영공간, 서울
  • 2024 단체 <종근당예술지상 11회>, 세종문화회관, 서울
  • 2024 단체 <울산 모색: 울 도시, 울 미술>, 울산시립미술관, 울산
  • 2020 단체 <제 3의 과제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서울
  • 2024 Solo <Floating Shadows in The Void>, Alterside, Seoul
  • 2023 Solo <Never Even Seen It>, Spaceuooyoung, Seoul
  • 2024 Group <CKD Yesuljisang 11th>, Sejong Museum of Art, Seoul
  • 2024 Group <Rediscovering Ulsan>, Ulsan Art Museum, Ulsan
  • 2020 Group <The Third Project Show>, PS Sarubia, Seoul

Critique

타인의 기억에 새겨진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

김수진 (미술비평가)

 

박시월 작가는 유년 시절부터 허구적 서사를 종이 위에 형상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상상 속의 이야기를 만화적 형식으로 구현하며 회화적 묘미와 쾌감을 일찍이 경험하였다. 종이와 연필이라는 소박한 도구로 일상을 기록하던 초기 작업은 현재의 대형 드로잉과 설치가 결합된 확장된 형식으로 진화하며 회화의 본질적인 조형성에 대한 탐색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는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종이 위에 연필이나 목탄으로 새기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인 ‘그리는 행위’에 천착해 왔다. 이는 같은 세대 작가들이 디지털 환경에 매몰되거나 이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경향과는 다르게 아날로그적 기법과 회화적인 감각의 조화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내면보다 타인의 심리와 경험을 세밀히 관찰하고 이를 문학적인 언어로 재구성하여 시각화하는 일명 ‘회화로 훔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연필, 목탄, 파스텔 등 익숙한 매체를 통해 타인의 기억과 자신의 추상적 감각을 융합하며 ‘아름다움’이나 ‘잡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단상과 서사를 화면 위에 기록해 나간다. 박시월의 작업을 관통하는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스무 살 무렵에 접한 이석원의 산문집 『보통의 존재』(1994)에서 기인한다. “나는 내가 본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한 것. 오직 너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는 문장은 작가에게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이때부터 줄곧 타인의 경험이나 기억 속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추적해 작업의 실마리를 풀어왔다. 이 과정에서 ‘사랑에 빠지는 순간’, ‘마음’, ‘상실감’ 같은 문학적 수사와 감정적 언어들을 작품 곳곳에 등장시킨다. 자칫 평범하거나 진부하게 여겨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과 질문은 작가 특유의 사유와 감각이 뒤섞이며 작품의 영감과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인의 아름다운 경험과 기억의 파편을 훔치다

박시월은 타인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의 파편을 수집하고 재구성한다. 2019 ~ 2021년 무렵에 발표한 드로잉 시리즈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타인의 기억을 문학적인 감수성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예컨대 <마치 잠실 야구장이 떠 있는 것처럼>과 <네가 본 아름다운 것을 훔치고 싶었다>는 산문 속 텍스트를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하거나 특유의 서정성을 화면에 옮겨 문학적인 서사가 어떻게 회화적인 언어로 구현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한편, 2021년에 발표한 대형 드로잉 <동틀 무렵 그와 걷던>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너비가 7M가 넘는 긴 화면은 연인들의 찬란한 순간을 파노라마로 기록한 듯 전시장의 양 벽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며 공간을 감싼다. 이 작품은 실제로 작가의 이모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떠오른 ‘타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구상적 이미지로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타인의 기억이라는 파편화된 소재를 바탕으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치밀함과, 이를 오직 연필과 목탄만으로 시각화하는 작가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리는 행위 못지않게 ‘지우는 행위’를 강조한 화면이 시선을 잡는다. 작가는 애초에 완성된 작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화면을 깨끗이 지워서 비워내는 행위를 감행한다. 팬데믹의 정점에서 개최된 전시 《남겨진 조각들은 서로를 위로하기 시작했다》(2021)는 지우고 비워내는 과정에 당시의 심경을 투영한 기록과도 같아 보인다. 익숙한 것들과의 단절, 상실에 대한 단상은 이미지를 지우는 행위로 드러났고, 작가는 캔버스에서 탈각되어 떨어져 나간 무수한 가루들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졌다고 고백하였다.

 

화면 아래에 쌓인 흑연과 목탄 가루는 이러한 누락된 조각이자, 드로잉 행위와 시간이 남긴 흔적이다. 이 부산물들은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개인들이며,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감각으로 전시장에 남아 작은 연결고리가 된다. 이는 타인의 기억을 묻고 그들에게 축적된 시간과 역사를 더듬으며, 고립된 개인들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접점을 마련하는 시도이다.” (박시월)

 

짐작하건대 바닥에 쓰레기처럼 쌓인 흑연과 목탄 가루, 지우개 가루는 마치 작가를 상징한 것처럼 보인다. 박시월의 작업에는 이렇듯 단절과 고립, 그리고 이를 둘러싼 관계에 대한 은유가 배어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경험은 작가에게 그간의 회화적 실험을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정립하는 기점이 되었고, 타인의 기억 속에 잠재된 파편화된 서사들을 이전보다 촘촘하게 엮으며 개성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박시월은 2023년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동시에 본질적 타자인 ‘어머니’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업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어머니 생애에서 가장 찬란했던 기억이 다름 아닌 자신의 태몽이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비로소 작가만의 고유한 서사가 투영된 작업을 시작한다. 가장 소중한 존재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가는 어머니의 태몽을 가리켜 “엄마와 함께 만든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경험이 없었던 타인의 낯선 기억을 조형화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머니와 공유한 시간 속에서 파생된 심리적인 갈등은 적지 않은 진통을 남겼으나,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타인에 대한 깊은 공감에 도달하고 이러한 내적인 성찰을 이전과는 다른 조형으로 확장시키는 동력으로 만들었다.

작가는 어머니의 서사를 화면에 구축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진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3M가 넘는 대작 <본 적도 없으면서>(2023)는 광활한 ‘설산(雪山)’ 위에 별 하나가 떠 있는 태몽의 한 장면을 구상적인 이미지로 포착한 뒤 그 위에 유리판을 중첩해 완성한 작품이다. 화면 전면에 펼쳐진 설산의 장쾌한 미감은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하지만, 투명한 표면 이면에는 모녀간의 피할 수 없는 심리적 갈등이 복선처럼 깔려 있다. 작가의 고백처럼 서로가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공생하는 모순적 관계를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설산의 정경과 유리의 질감 속에 투영한 일종의 모순성을 암시한 작품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설산을 그리는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뒤틀렸던 잠재된 감정이 드러났고 이로 인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자신의 볼품없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어머니의 기억이 아름다운 화면으로 가시화되었지만 정작 타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훔치려고 했던 일”은 실패했다고 고백한다. 작가의 이러한 솔직한 고백이 담긴 이야기는 이번 전시 출품작인 <조난>(2024)으로 이어진다. 너비가 3M가 넘는 광활한 화면에 펼쳐진 설산은 마치 어머니의 태몽이라는 타인의 허구적 공간 속에서 길을 잃고 고립된 상태의 작가 자화상과도 같아 보인다. 아울러 ‘조난’이라는 상황의 설정은 단순히 시각적인 재현을 넘어 상상과 실재 사이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의 실존적 고민을 짐작게 한다.

이처럼 대형 화면에 허구적인 서사를 구상적으로 가시화하는 방식은 박시월의 회화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기제다. 중심 서사를 포착해 구조를 세우는 과정에서 타인의 기억뿐 아니라 창작 주체인 작가의 심리가 개입되며 작업은 종종 예상하지 못한 국면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특히 태몽을 모티브로 한 ‘설산’ 연작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종이 위에 유리판을 덧대어 조형적인 변주를 모색한 점에서 주목된다. 설산의 형상은 화면에 드러나지만, 그 이면에 잠재된 타인과 작가의 비가시적인 심리적 잔상들은 유리라는 매체로 중첩된 이중 구조로 존재한다. 이에 따라 관찰자가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는 설산의 장엄한 전경이 선명히 실재하지만, 화면에 가까이 갈수록 이미지는 소거되고 인식 불가능한 추상의 상태, 즉 시각적인 모순의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이중 구조가 지닌 양면성은 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아름다움의 실체’에 대한 작가의 근원적인 메시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감정의 양면성과 추상적 감각의 만남

‘설산’ 연작을 기점으로 박시월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유리와 거울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허공에 뜬 그림자>(2024)는 안개 낀 해변에서 목격한 그림자의 잔상을 포착한 것인데, 2M 높이의 종이와 유리판에 각각 연필로 형상을 새긴 뒤 이를 금속 프레임으로 결합한 구조를 취한다. 여러 점의 커다란 구조물을 공간에 세워 조명을 비추면 허공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효과를 낼 수 있다. 작가는 이를 “양면 회화”라고 이름 붙이고 ‘허공에 뜬 그림자’라는 물리적 모순성의 상황에 인간의 양면적인 감정을 투영한다. 따라서 여러 점의 거대한 구조물,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 상황을 공간에 설정한 것은 타인의 “아름다움을 훔치는 과정에서 경험한 모순”을 시각화하기 위한 조형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작가는 대형 유리판 위에 은거울을 중첩한 <Reflection>(2025) 같은 작품을 통해 물과 거울의 상호 관계를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관념과 연결한다. 즉 물과 거울의 속성상 서로 비추는 반영된 이미지가 허상(虛像)이라는 점에 주목했는데, 이는 실체성이 없는 아름다움을 붙잡으려는 시도가 결국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심리적 양면성과 물성의 탐색은 추운 겨울 강물에 비친 ‘설산’(혹은 설산을 비추는 물)을 표현한 <물이기도 거울이기도>(2025), <물이 담은 것>(2025) 같은 작품으로 구체화 된다. 작가에게 ‘물’은 모든 존재를 포용하고 흡수하는 동시에 어떤 실체든 반사하는 거울과 같은 성질의 매체인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양면 회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타인의 감정과 미의 본질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중적인 시선을 드러내기 위한 조형적 장치로 작용한다.

 

관객이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형상을 마주함으로써,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의 촉각적 모순을 함께 체감하도록 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름다움의 형상과 모순적인 감각을 회화적 언어로 탐구하며, 아름다움이라는 알 수 없는 대상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응답해 가는 여정을 담아낸다.” (박시월)

 

박시월은 드로잉을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설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타인의 기억과 자신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설치 작업으로 풀어냄으로써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비록 현란한 색감과 강렬한 물성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다양한 재료를 다루며 물성과 이미지와의 관계를 심리적인 요건과 결합한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유리에 은거울 그리고 조명을 활용하는 등 단순히 즉각적인 감각을 표현하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 감정의 양면성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이를 통해 ‘그림자’와 ‘반사(reflection)’라는 내적인 논리를 구축함으로써 구상적 차원을 넘어 아름다움이 표상하는 실체를 포착하고자 한다. 요컨대 작가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쫓는 과정’을 가시화하는 행위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것이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상(像)에 대한 모순성을 경험하도록 한다.

예술가들에게 아름다움이라는 화두는 다소 진부해 보일 수 있으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하지만 박시월처럼 이 단어를 작업의 전면에 호명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때로 언어는 이미지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창작 주체의 사유를 강조한다. 작가는 이를 간파한 듯, 언어의 배후에 잠재된 파편들을 조합해 아름다움이라는 관념과 이미지 사이의 미세한 틈을 추적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타인의 아름다운 순간을 구상의 장면으로 연상하지만 추상으로 감각한다”라는 다소 까다로운 문장을 제시한다.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타인의 서사와 작가의 예민한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상상해 본다면, 우리는 비로소 이 난해한 문장에 담긴 의미를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