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graphy
- 2024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회화전공, 박사 수료
- 2020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학과, 회화전공, 석사
- 2015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회화학과, 학사
- 2024 Konkuk University, School of Art, Fine Art, Ph.D. Completed
- 2020 Konkuk University, School of Art, Fine Art, MFA
- 2015 Konkuk University, School of Art, Fine Art, BFA
Exhibition
- 2024 개인 <무위한 풍경>, 한벽원미술관, 서울
- 2018 개인 <혼자 가는 먼 집>, 갤러리 도스, 서울
- 2024 단체 <시작의 시작>, 슈페리어갤러리, 서울
- 2024 단체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들>, 한은갤러리, 서울
- 2023 단체 <자유로이 노닐다>, 김홍도미술관, 안산
- 2024 Solo <The Natural Landscape>, Hanbyeokwon Museum of Art, Seoul
- 2018 Solo <A Long Home Alone>, Gallery DOS, Seoul
- 2024 Group <Start of Start>, Superior Gallery, Seoul
- 2024 Group <Korea’s Young Writers of Our Time>, Bank of Korea Gallery, Seoul
- 2023 Group <Free Play>, Kim Hong-do Art Museum, Ansan
Critique
“숨 쉬는 꽃”을 통해 바라본 실존의 풍경
김수진 미술평론가
인적 없는 무명의 식물들로 가득한 수평선이 화면에 끝없이 펼쳐진다. 묵직한 안개가 깊은 숨을 내뿜는 가운데 누군가의 기억은 노란 추억이 되어 물들고, 신비한 바이올렛 빛깔의 무리가 뭉쳐지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들판을 가로지른다. 한편에선 푸른 호흡이 에워싼 이름 모를 들꽃이 완전히 고립된 섬처럼 부유하며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처럼 생명이 움트고 있는 박지수 작가의 “풍경” 시리즈는2013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he Airy Landscapes’(2013-2014) 시리즈는 박지수 작가의 어릴 적 ‘상실’ 경험에 대한 자전적인 기록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른 길을 걸었던 작가는 당시에 겪은 심리적인 상실감과 트라우마를 ‘Landscapes’ 시리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상실의 경험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면서 주변 자연환경으로부터 치유의 실마리를 찾고자 생명이 실존하는 다양한 풍경을 화면에 펼쳐냈다. 생멸이 순환하는 자연현상과 정서적인 유대가 형성된 풍경은 더 이상 공허한 상실의 장소가 아닌 가능성과 소망이 담긴 이상적인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이같은 작가의 심리적 경험들은 무려 4년에 걸쳐서 제작한 <노란색 기억(The yellowmemory)>(2014-2017)을 기점으로 <Breath of Gypsophila(안개의 숨)>, <섬>, <청목(靑목)> 같은 작품으로 등장했다. 2013년작 <息花_숨 쉬는 꽃>의 경우 화면중앙의 몇몇 작은 꽃송이들과 미세하게 흔들리는 가느다란 잎사귀는 실존의 정경을 연출하며 연한 보랏빛과 푸른색 화면에 생명의 숨을 부여하는듯하다.
2015년부터 작가는 ‘Luins Landscapes’ 시리즈를 통해 상실감에 따른 심리적인 현상과 실존적 상황을 재해석한 작품들을 발표한다. 상실에 따른 자신의 공허했던 기억을 ‘폐허’라는 상징적인 장소를 설정해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며 공존하는 상황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화면에는 폐허를 상징한듯한 집이 등장하면서 낯선 장소에 고립된 상황성과 그에 따른 존재의 갈등을 암시해준다. 특히 집 주변을 감싸는 특유의 분위기(atmosphere)가 화면에 긴장감을 주며 시선을 잡는다. <창백한 밤>,<Violet Landscape>, <Blue Room>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블루와 바이올렛 색감이 화면 가득 밀도 있게 드리워진 상황은 폐허로 상징된 실존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강렬하게 전하고 있는듯하다.
‘Luins Landscapes’ 시리즈를 비롯해 박지수의 작품 전체를 통해 감지되는 화면특유의 긴장감이 있다면 그것은 색에 대한 낮은 조도(照度) 표현이 암시하는 소외와 고립 그에 따른 상실감일 것이다. 아울러 각 시리즈마다 연속되는 ‘수평선’은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긴장감 안에서 최소한으로 조율된 빛과 색은 서로 경쟁하는 것 같지만, 세밀하게 바라볼수록 서로가 상생 관계를 이루며 긴장감을 해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일종의 누아르(noir) 영화의 특정 신(scene)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미감은 작가의 작은 스케치 한 점마저도 예외 없이 시선을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예상컨대,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로 특유의 색감을 통해서 이전 작업에서 보았던 ‘이상적인 풍경’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성이 강조된 ‘실존적 풍경’으로 작가의 시선이 옮겨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풍경”으로 상징된 자연을 통해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을까. 대상 존재, 특히 상실된 것들의 순수한 존재성을 강조하는 박지수의 회화는 자연, 대상의 본질 같은 원론적인 문제에 대한 사유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한다. 그러나 과거의 자연주의처럼 인간이 자연의 일부로서 합일되는 자연 순응성에 대해 말한다거나 아름다움의 본질을 자연으로부터 찾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주변환경과의 경험과 기억을 중심으로 살아 있는 사물들을 타자인 대상으로 보고, 변화를 관찰하고 현상을 내재화해 화면에 투영한다. 이로써 자연을 막연하게 도달해야 할 이상향이 아닌 타인으로서 나란히 존재하는 동등한 관계로 인식한다. 이런 관점은 보통의 작가들처럼 자연을 창작자와 일치시키는 심물합일(心物合一)적 자연관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물(物)을 저마다의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는 작가의 유아(有我)적 심미의식은 유명(有名)의 구체성을 띤 작품 제목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화면에 등장한 자연 사물들은 독립적인 개성과 가치가 있고 저마다의 고유한 정체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식물들이 모여있는 들판이라는 장소를 표현함에 있어서 사물들이 부수적인 요소로 읽히기보다는 풀 한 포기, 작은 꽃송이가 각각 의미와 개성이 있고 서로 갈등하면서 공존하는, 불완전하지만 현실적인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사물의 ‘일의적(一意的)’인 가치라고 표현한 작가는 작은 잎사귀와 미쳐 피어나지 않은 여린 꽃봉오리를 화면의 주인공으로 세워서 중앙에 배치한다. 자연 안에서 삶을 바라보되 물아일체적 관점의 내재화보다는 대상 자체의 존재성에 따른 현상으로부터 자연의 본질을 탐색하고 자신의 심상을 다양한 풍경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생명의 ‘숨’을 아우르는 공간
박지수의 풍경화는 실제 사생을 통한 실경(實景)에 기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잘 알려진 명소보다는 일상 주변에서 주목하지 않는 자연의 모습들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가능한 한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그만의 장소에서 자연의 본질적인 모습을 찾고자 관심을 기울이고 그로부터 사색하기를 즐긴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여러 번 거주지를 옮겨가며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노출되었던 경험 덕분에 낯선 자연환경을 거부감 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작품 구상을 위해 주로 집 주변의 풍경과 들판을 여러 차례 찾거나 고향인 강릉 인근의 바닷가로 향하기도 한다. 사변적인 논리를 펼치기보다는 주변에서 창작의 동기를 찾아가고 일상의 익숙함이 낯섦으로 전환되는 심리적인 효과를 화면에 투영한다. 일상 가운데 만나는 작은 식물들과 이들이 연출하는 실존의 풍경은 생명을 향한 작가사유의 씨앗이 발아해 자라나고 자연과 유대를 형성하는 매개로 기능하는 곳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Empty Landscapes’는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불필요한 욕망과 고정관념을 덜어내기 위한 바람을 담았다. 작가는 상실이라는 키워드가 수동적인 에너지라고 느꼈고 이것을 필연적이자 자발적인 차원으로 전환하고자 했다.사생을 강화해 자연의 현실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현재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투영하였다. 이를 반영하듯 풍경들은 이전보다 여유롭고 한결 자연스러운 미감이 묻어난다. <사과나무 숲>(2018), <The Breathing Fields(숨 쉬는 들판)>(2020),<느린 비움>(2023)처럼 이전과 다른 밝고 안정감 있는 색조의 화면 구성은 작가심리의 변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모든 고정된 시각을 해체하듯 지극한 평범함으로 무장한 정경은 제목처럼 “모든 것의 장소”이자 “시작과 끝의 장소”로서 박지수 작가“풍경”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다.
한편 <모든 것의 장소>(2023)는 겨울을 지내고 봄으로 가는 계절의 경계를 그린 것으로, 작가는 생명이 움트고 있는 들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 상실과 존재라는 개념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흐르는 들판>(2024)의 경우 의도적으로 원근법을 멀리하고 평면성을 강조한 작품이다. 작가에 따르면 사물을 묘사하는데 있어서 어느 한쪽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화면 전체에 균등한 힘을 적용해 갈등을 줄이고 공존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작가는 일련의 시리즈에 나타난 이 같은 흐름을“무위(無爲)의 풍경”이라고 말하는데, 이때 ‘무위’란 어떤 철학적인 담론의 차원보다 ‘자연 그 자체’로서 인위성을 덜어낸 작가의 심상이 녹아든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지수 작가는 자연을 철저하게 존재로서 인식하지만 동시에 대상과 일체 되고자 한 양가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 모순적이며 대립적인 자신의 심리적 양상을 풍경에 깊이 각인함으로써 자연의 변화하는 현상과 나란히 관계를 맺어가는 듯 보인다.
최근에 작가는 전통 한국 산수화의 자연관으로부터 영감을 재해석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실경을 바탕으로 수 차례에 걸친 사생을 통해 기존의 이념과 가치를 단순함과 간결함으로 승화하려는 실험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무위의 풍경”(2024) 시리즈에 나타난 재료와 기법의 변화는 물성 연구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근래에 한지의 물성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따뜻한 느낌과 물감이 흡수되는 상황, 건조과정, 질감의 부드러움 등에서 조형 구상에 영감을 받았고, 한지뿐 아니라 종이의 내구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콩댐 기법’을 작업에 차용하고 있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을 사용하는 대신에 한지에 콩기름을 여러 차례 덧발라 변색을 줄이고, 단청을 그리던 안료에서 착안해 천연 안료에 들기름(명유)을 배합해 얇게 펴 바르는 방식을 채택해 독특함과 깊이감을 더하고자 했다. 작가에 따르면, 보통 동양화에서는 장지에 아교를 사용하지만 수용성 매체보다는 오일을 사용하고자 했고 천연 콩기름을 바르는 콩댐 기법이 자신의 작품에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울러 전통 종이인 장지와 서양의 유화 물감이라는 동서양의 이질적인 재료를 어우러지게 한 시도 또한 작업의 연장으로 보았다.
철학적인 서사가 감지되는 작품 제목 또한 인상적이다. <시작과 끝의 장소>(2022)는 박지수 작가가 캔버스 대신에 콩댐 기법의 장지에 그린 첫 번째 풍경으로, 지극히 평범한 농촌 풍경처럼 보이지만 전원미에서 느껴지는 풍격과 여운이 결코 가볍지 않다. 작가는 새벽 시간을 ‘시작과 끝의 장소’라고 생각하면서 제목을 지었는데, 하루를 마치고 다음 날 동이 틀 무렵을 상실과 존재의 경계가 공존하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사물 간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불투명함 때문인지, 화면에는 산과 나무로 가장한 크고 작은 희미한 섬들이 땅의 그림자를 품은 강물에 수평선을 그리며 떠 있는듯하다.
마찬가지로 <숲, 섬_한 낮의 검은 독백>(2022)은 들판 한가운데 숲인지, 섬인지 착각을 일으키는 모호한 형상과 구도가 생각의 여백을 주고, 숲과 섬이 마치 ‘숲,섬’이 되어서 공존하고 있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성을 제시한다. 작품 중에는 “섬”이라는 단어가 다수 발견되는데, 작가는 ‘숲, 섬’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섬이 고립된 장소가 아니라 자율적인 개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작가의 소외와 고립 그리고 상실감의 경험과 치유과정이 숲과 섬 혹은 ‘숲, 섬’으로 종합되면서 상징화된 것으로 이해 가능할 것이다.
존재에 대한 관찰 그리고 생의 가능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계속 이어진다. ‘Still- Life in Landscapes’ 시리즈(2021-2022)는 식물들의 초상화이다. 주변의 이름 없는 무수한 식물들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바라보면서 다양한 사색과 감상을 재구성한 작품들이다. 작가는 죽음에 처해 있는, 혹은 삶과의 경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생(生)에 대한 심상을 식물의 초상에 투영했다. 현재 살아 있는 것들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활기를 잃고 점차 시들어가는 생명의 시간성을 성찰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검은 독백’, ‘새빨간 진실’, ‘푸른 거짓말’,‘노란 자유’, ‘푸른 새벽’, ‘Violet Planet’ 등과 같이 색을 통해 자신의 심상과 감각적인 사유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컨대 낯선 장소에 도달했을 때 직관적인 감각들, 공기와 하늘빛 그리고 흙냄새 등 장소와 시간에 따른 즉흥적인 영감이나 사색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근 작업에서 박지수 작가는 사물의 표현보다 화면에 자신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무위한 풍경_푸른 숲>(2024)을 비롯한 원근법의 해체를 의도한 평면적인 작품들은 그러한 시도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점’으로 표현하는 추상적인 표현기법을 예로 들면서, 화면에서 점을 동등한 힘과 에너지 그리고밀도로 그려냄으로써 일종의 평등의 가치를 행위로서 드러냈다고 설명한다. 관객들이 작품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힘들더라도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 소통의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행위를 강조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회화 고유의 평면성을 적극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이 같은 원근법을 해체한 추상적인 기법에서 찾고 있는듯하다. 최근작 가운데 유난히 평면적으로 보이는 작품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도 무방할 것이다.
“풍경”은 자연과 창작 주체가 나란히 현존하며 숨을 쉬는 상징적인 장소로서 작가와 자연을 이어주는 적극적인 매개자이다. 또한 사물들이 저마다의 가치를 발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 이상이 담긴 곳이다. ‘꽃’을 통해 바라본 실존의 풍경은 다양한 생명의 ‘숨’을 아우르는 공간이다. 박지수 작가의 ‘사유하는 풍경’은 관객들에게 마치 “느린 비움”을 재촉하고 있는듯하다. 자연과 실존에 대한 작가 사유의 깊이와 그 확장 가능성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시선의 묵직함이 창작의 원초적인 자유로움과 경쟁하진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