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킴
Regina KIM

b.1984

상실의 섬 | 2023 | 디지털 콜라주, 미디어 아트

루머의 숲 | 2023 | 디지털 콜라주, 미디어 아트

가려진 믿음 | 2023 | 디지털 콜라주, 미디어 아트

Biography

  • 2024 런던왕립예술학교 석사 재학
  • 2017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학사
  • 2024 Present Royal College of Art, Contemporary Art Practice MA
  • 2017 Yonsei University, Clothing & Textiles BA

Exhibition

  • 2024 단체 포커스아트페어, 미디어아트(가우디 파운데이션)사치 갤러리, 런던
  • 2023 단체 런던 아우터넷 미디어 전시, 선정 작가, 런던
  • 2022 단체 뉴욕 타임스퀘어 전시, 아들러 후원, 뉴욕
  • 2022 단체 스타트아트페어,사치 갤러리, 런던
  • 2021 단체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전시, 포르쉐 후원, 한국
  • 2024 Group Focus Art fair, Media art with Gaudi Foundation, Saatchi gallery, London
  • 2023 Group London Outernet Media Exhibition, Selected Artist, London
  • 2022 Group New York Time Square Exhibition, Sponsored by Adler, NYC
  • 2022 Group Start Art Fair London, Saatchi Gallery, London
  • 2021 Group Gwangju Design Biennale exhibition, sponsored by Porsche, Korea

Critique

한국화랑협회_레지나 킴 작가 평론

이주희 미술평론가

1. 새로운 세계, 다분화된 감각,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레지나 킴(Regina Kim) 작가에 의하면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다룬 미디어아트 작품들”이라는 파일 하나를 전달받았다.

영상의 시작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시선으로 시작되는 화면에는 가상의 공간에 전면으로 길게 뻗은 2차선의 도로가 보이고 그곳을 달리는 차량은 관람자의 방향으로만 달려온다. 시간이 갈수록 시선의 이동에 따라 형태가 드러나는 크고 높은 산처럼 보이는 사막에선 아치 형태의 문이 솟아오르고 문안으로 연결된 새로운 자연공간은 가상공간 안의 또다른 가상을 비춘다. 점점더 상승하는 시선에는 사막산 뒤로 보다 거대한 부피감을 드러내는 달 혹은 행성의 희미한 실루엣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고 이와 함께 ‘REGINA KIM’이라는 작가명과 ‘Beyond Borders’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앞선 작품에 대한 서술은 필자의 눈에 보이는 현상을 기록하기 위한 시도로 객관적일 수도, 주관에 그칠 수도 있는 서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자신의 현실 감각과 비슷한 서술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거짓 혹은 또다른 누군가에겐 서술보다 풍부한 감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20초가 채 되지 않는 인트로는 무엇이 보고 들리는지 기술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만 시작부터 영상과 사운드가 복합된 작품의 분위기는 현실적이기 보단 가상적이고 아날로그적이기 보단 디지털스러운, 맑음 보다는 흐림, 한국적이기 보단 이국적이며 나아가 동양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감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인트로 이후 이어지는 영상과 사운드가 합쳐진 작업들이 작가가 이야기 한 “디지털 세계와 아날로그 세계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자 “디지털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다룬 미디어아트 작업들”인데 약 3분에 거쳐 〈The forest of Rumours, 루머의 숲〉, 〈The Blind Faith, 눈먼 자들의 믿음〉, 〈The Island of Loss, 상실의 섬〉, 〈The Digital Babel Tower, 디지털 바벨탑〉이 이어졌다.

2. 오픈소스 세대의 대두

온라인 상에서 미팅을 마친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현재 진행형이자 성장 중인 작가라는 것이었다. 모든 창작자가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진행과 성장 중에서도 이제 언어에 대한 습득에 이어 언어의 규칙·성격 등을 만들어 나가는 중일 것이라는 인상이었다. 2025년 봄 현재, 스스로를 비쥬얼 아티스트(Visual Artist)라 말하는 레지나킴은 영국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석사과정의 ‘컨템포러리 아트 프랙티스(Contemporary Art Practice)’ 코스웍 중이면서도 현재까지 국내외 뮤지션 뿐만 아니라 다국적 기업·브랜드와 협업하며 전시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또한 작가의 작품은 런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와 아우터넷 런던(Outernet London) 등 국제적 전시 공간에서 소개되었고 여전히 다양한 영역으로의 도전과 협업을 그치지 않는 폭넓은 활동량을 보이고 있다. 협업해 온 대다수 클라이언트들의 브랜딩 역사가 레지나킴의 아티스트브랜드보다 길다는 것과 그간 작가의 협업 결과물이 다양한 분위기를 표현해 왔다는 것을 참고 했을 때, 유연함과 균형감이 좋은 작가이거나 각 브랜드에서 작가가 가진 고유한 감각과 감성을 활용하고자 했을 것이라 예상되었다. 작가 역시 창작에 대한 흥미와 사려깊은 태도를 보이면서도 규정과 고정보단 성장과 확장을 중점으로 삼고 있었다.

현재 레지나킴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대주제는 ‘경계를 넘어서 Beyond Borders’이다. 작가는 자신의 주제 의식을 담은 영상과 사운드가 결합 된 미디어 작품을 매체이자 표현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작업의 인트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던 ‘Beyond Borders’라는 문구는 창작에 있어 다양한 주제와 매체들을 넘나들고자, 스스로 느꼈던 창작자 자신에 대한 틀을 넘어서고자 설정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엔 비교적 최근 영국에서 창작을 시작하며 맞닥뜨리게 된 환경이 ‘나’와 ‘나의 경계’를 감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고, 비슷한 기간 세계에 드리워진 단절로 새로운 창조와 몰입의 공간을 찾던 이들의 방향성도 함께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 또한 비슷한 시기 콜라주로써 표현 언어를 형성해 가며 새로운 공간으로 뛰어든 세대에 해당한다. 이후 현재까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이미지의 수집과 가공, 가공 방법의 다양화에 노력을 기울였으며 현재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미디어와 세계관을 2-3차원의 바깥으로 확장하기 위한 시도 중에 있다.

기본적으로 레지나킴 작가의 세계는 가상공간(virtual space)이자 초공간(hyper space)에서 구현된다. 근원부터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작가의 세계는 낯선 공간을 진취적이지만 유연하고도 신중하게 다룬다. 종종 분야를 막론하고 국내가 아닌 타문화권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국내활동을 시도하는 아티스트들의 문화적 충돌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레지나킴의 경우는 모국에서 충분한 시기를 보낸 후 자신이 선택한 문화권에서 창작을 시작해 세계를 구축하고 언어를 구축해 나가는 수순에 있다. 이러한 경우의 방향성을 쉽사리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단일한 문화적 배경에서 오래도록 직접적인 묘사와 숙달에 공을 들이는 것을 주요 모티프로 삼는 아날로그 창작론과 다른 근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만일 작가의 인식의 지도 작성(cognitive mapping)이 시도된다면 새로운 지형도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적 예술의 목표, 가치 확립과는 다른 감각으로 형성된 지형에선 마치 오픈소스 모델처럼 무경계적인 상상의 시도와 확장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확장 간의 개방적 협업과 무한한 변화를 포용할 수 있는 다양성과 유연함이 더욱 존중된다. 전지구적 팬데믹을 지나 레지나킴의 경우와 같이 물질적 경계는 와해 되고 주제와 스토리텔링이 더욱 돋보이는 가상공간이자 초공간에서 활동하는 세대들이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3. 자율성의 작용과 반작용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일찍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의 개선능력’을 말하며 이러한 개선가능성이 영화가 스스로의 영원한 가치를 극단적으로 포기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과거 조형예술의 창조물들이 말 그대로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것에 반해 개선능력을 갖춘 예술작품들은 조립 가능한 예술작품의 시대에 고유함을 잃고 가치가 몰락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러한 벤야민의 주목은 현대 예술의 일정 영역에서도 타당성을 지니지만 미디어를 지나 뉴미디어-네오미디어 시기에 접어든 예술작품들에선 그 의미가 다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레지나킴 작업의 시작인 이미지들의 수집과 가공은 원본의 훼손에서 존재의 양상과 창의의 신뢰도가 발생하는 역설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미디어화의 재료가 되는 원본이자 데이터 또한 고유한 정체성을 고수하기보단 새로운 차원으로의 변화 용이성 혹은 원본의 훼손자인 작가의 감각적 활용 가능성에 가치판단이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구상적 표현의 근원인 인간 출처의 이미지마저 와해 된 근원을 이용하는 레지나킴의 작업은 감각과 현상의 즉각적인 표현에 있어 새로운 속도감을 지닌 장르로 자리매김 했다.

과거의 예술가들은 독자적인 스타일이나 어떠한 풍(風), 상징을 제시하기 위해 긴 시간 천착했으며 그것은 여전한 예술적 추구로 남아있다. 그러나 마샬 맥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1911-1980)이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글로벌(Global)’을 이야기한 지 60년이 채 되지 않아 현재의 어떤 예술가들은 세계사회에서 쏟아지는 정보와 정보마저 되지 못하는 미세한 신호를 감각적 활용재로 삼는다. 글로벌-인터넷-스마트-AI시대에 이르는 시대의 진화와 이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속도감은 벤야민의 또다른 지적처럼 “인간의 태도 그리고 일과(日課)의 대량 복제”와도 연관된 양상을 보인다. 원본의 고유함과 아우라의 효과에 기댄 예술작품의 선도적 향유가 아닌 감각 매체의 무경계적 확산과 자율성이 폭발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상상과 확장의 용이함, 이러한 특징을 코어 삼아 새롭지만 범용적이고 글로벌한 감각 언어를 형성하는 것이 현재의 미디어 작가들이 열중하는 지점인 듯 하다. 혹은 씬을 형성해 내부의 논리를 형성하고 보다 넓은 수요층이 그곳으로 유입될 수 있게 하는 관성적 영역에서의 탈영토화를 추구하거나 나아가 새로운 영토의 구축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레지나킴은 과거 팝아이돌과의 협업 이후 결과물에 대해 예상외의 의견들을 수신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미 다회차의 협업으로 형성된 이해도가 바탕인 AI 작업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반응들은 AI작업 자체에 대한 해석과 수용, 다양성이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이러한 경험은 작가에게 AI 내외부에 존재하는 편견에 대해 보다 깊은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딥러닝(deep structured learning)을 필두로 높은 수준의 인공신경망을 구축하게 된 AI 이지만 여전히 전세계 각문화권의 다양한 인간 감성에 사려깊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또한 최근엔 AI조차도 특정 사상에 편향되거나 종속적인 성격을 노출하며 대중의 우려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레지나킴 역시 AI와 미디어 작업 같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창작물의 수렴처가 인간사회라는 것을 재확인한 후 인공신경망과 인간적 신경망을 아우르는 감수성의 중요함을 보다 깊게 받아들였다. 현재에도 곳곳에서 복합적 미디어의 효과가 도핑처럼 사용되어 자극만을 전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가능성과 그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균형”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작가의 말처럼 현시대의 자율성을 활용하는 세대가 마주한 새로운 차원의 인간에 대한 사유와 질문이 수행되고 있다.

4. 수행하는 가상, 사유하는 미디어

레지나킴의 초공간이자 작업 속 세계에선 무중력의 부유 공간처럼 수많은 도상들이 떠오른다. 부유하며 결합하는 도상들은 일상적 의식의 알고리즘과는 상이한 논리와 비논리 또는 무논리의 형태를 구성한다. 베니타스의 상징들 같은 꺼림칙한 조형들이 결합된 형태이거나 반복적인 기계음에 맞추어 좌우를 살피는 충혈된 눈알. SNS와 디지털 기호들이 구축하는 무생명적이고 차가운 공간은 세계 전반에 드리워진 긴박하고 장엄한 음악과 함께 작가가 〈상실의 섬〉이라 은유한 것처럼 무겁고 섬뜩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화면에선 상하좌우 인간의 시선에 맞게 결합 된 형상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보면서도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형상들이 지속적으로 지나갈 뿐이다. 〈루머의 숲〉처럼 명확히 인지되지 않는 현상 속에 누군가의 의도가 작용하고 누군가의 정서가 혼란에 빠지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불분명한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세계는 부지런히 현실을 현상한다. 〈디지털 바벨탑〉을 쌓는 이들은 끊임없이 도상의 구성과 해체를 반복하며 정체성, 본질이라는 것을 상실한 신호들을 내보내고 이러한 신호와 〈눈먼 자들의 믿음〉은 한데 모여 허상이 된다. 이같은 허상의 고도에 따라 소외되고 고립되어 가는 이들이 늘어가는 현실을 레지나킴은 미디어 현상학(media phenomenology)으로써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아트로 분류할 수 있는 예술의 장르는 그 비물질·비영토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어떤 장르보다 글로벌 공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같은 특성은 특정 문화권을 예술작품의 구축과 이해의 토대로 삼기보단 오히려 보다넓은 인류의 공통감(Commen sense)에 질문을 던지고 변화하는 감성을 포착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예술을 “사회적·심리적·철학적 대화를 이끌어 내는 플랫폼”이라 말하는 작가 또한 비쥬얼(visual)과 미디어(media)라는 국제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한다. 1장에서 선술한 것처럼 디지털 미디어라는 현실 속의 현실 공간이 “누군가에겐 현실 감각과 비슷한 서술, 누군가에게는 거짓, 또다른 누군가에겐 현실보다 풍요로운 현실”로써 새로운 현상을 은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레지나킴의 예술에 대한 믿음이 〈눈먼 자들의 믿음〉에 그치지 않도록 그녀의 미디어 공간이 사색적인 공간이자 인류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공간으로 확장해 나가길 바란다.